[성경 본문 전문] 열왕기하 21:10-18
10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라 하셨더라
16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17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8 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설교 요약] 두 귀가 울리리라
설교: 김양재 목사 (우리들교회) | 2026.05.10 주일예배
우리가 이제 갑자기 큰 소리를 들으면 두 귀가 윙하잖아요?. 이제 폭죽이 가까이서 터질 때, 또 콘서트장에서 스피커 가까이 섰을 때 그럴 수 있어요. 너무 큰 소리 충격에 귀가 마비된 상태가 되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 정도 큰 소리로 우리에게 외치신다고 합니다.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하세요. 하나님은 왜 그렇게까지 외치셔야 할까요? 오늘 므낫세 인생을 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첫째로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에요.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우리 이제 9절에 지난번에 그 너무 죄의 무게가 심했잖아요. 그죠? 이방 민족보다 악행한 것이 더 심했는데, 이제 우리 같으면은 여기까지 하고 포기할 거예요.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므낫세 시대 55년, 이사야와 미가는 지나갔고 예레미야와 스바냐는 아직 등장하기 전이에요. 유명한 선지자는 보이질 않아요.
왜? 말씀이 안 들리니까 므낫세와 소통이 되는 선지자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도 여호와는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세요. 므낫세 시대에는 비록 선지자들의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예언이 끊이지를 않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 알아주지도 않는 모든 선지자들을 생각하니까 이제 막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고요.
그를 통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11절입니다.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하나님은 므낫세의 죄목을 밝히세요. 이 가증한 악을 행함은 우상숭배를 말하죠.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 온갖 잡신 등을 산꼭대기서부터 성전 안까지 채웠어요. 종교의 민주화를 이루었어요. 유다 어떤 왕보다 심했고 심지어 예전에 가나안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보다 더욱 심했어요.
아모리가 누구인가요? 출애굽 당시 아모리 사람은 이스라엘이 마땅히 진멸해야 할 가나안 일곱 족속 중에 하나였죠.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이제 그들과 아주 불신통혼을 일삼았어요. 아모리 족속은 이제 가나안 족속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고요. 창세기 15장 16절에 아브라함의 네 자손이 4대 만에 돌아오리니, 그러니까 이제 4대 동안 이스라엘 백성도 훈련시켜야 되는데 여기서도 그 유명한 슈브 동사의 미완료 동사를 썼어요. 끊임없이 기다리시는 거예요. 그런데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차기까지 기다리신다고 했어요. 아모리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누구나 회개하기를 끝없이 바라셔요.
근데 아모리 족속은 민수기 21장에 아모리 왕 시혼, 바산 왕 옥이 멸망하고 여호수아 10장에서는 다섯 명의 아모리 왕이 굴 속에서 죽죠. 그렇게 아무리 경고해도 안 듣는 아모리의 심판을 지금 보여 주셨거든요. 근데 열왕기상 21장에 "아합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그래서 드디어 앗수르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이 망했잖아요?. 근데 이걸 보고도 언약 백성인 남유다까지 아모리보다 더 심하게 합세를 해서 더 가증히 여겼다,
이게 이제...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아주 세속사의 끝판왕이 아모리라는 것. 그냥 우리는 잠시만 조금 보여지면 그냥 아모리를 쫓아가는 거예요. 게다가 유다의 므낫세 숭배는 브레이크가 없네요. 점점 더하기 심해져 갔다는 거예요. 왕이 이지경이니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9절에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라고 했잖아요. 다윗의 후손 유다 왕으로서는 있어서는 안 될 가증한 악이었어요. 지도자 한 사람의 우상숭배가 온 유다 백성을 우상숭배자로 물들인 거예요. 범죄하게 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세요? 12절에요.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오늘 제목이에요.
그러니까 왕이 범죄하고 백성이 범죄했을 때, 온 나라가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그 타락한 백성인 예루살렘과 유다의 이름을 이렇게 불러 주시고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이야" 외치시는 거예요.
왜 말 안 들어! 뭘 말씀하십니까? 재앙을 내리시겠대요.
이 표현은 여로보암에게 쓰였고 아합에게 쓰였어요. 여로보암과 아합이 누구예요? 다윗과 정반대에 있는 가장 악한 왕의 대표예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북왕국을 무너뜨린 심판의 언어가 남유다 한복판으로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므낫세는 남유다의 여로보암이고 남유다의 아합인 거예요. 재앙을 몰고 온 임금, 그가 바로 므낫세예요.
그런데 이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십니다. 너무너무 시끄러운 소리에 두 귀가 마비된 것처럼 멍멍해진다는 말이죠. 이 표현은 구약 전체에서 단 세 번 나옵니다. 사무엘상 3장에서 엘리 가문의 멸망을 예언할 때 "두 귀가 울리리라" 3장에 나와요. 예레미야 19장에서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할 때 "두 귀가 떨리리니"라고 했어요. 둘 다 세상을 충격과 공포로 흔든 멸망 사건이었어요. 므낫세 우상숭배의 결과가 이처럼 끔찍하리라는 경고의 말씀이에요.
근데 주님은 이 무서운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미리 말씀하신다는 게 이게 놀라운 일이에요. 모든 선지자들을 동원해서 외치고 또 외치시는 거예요. 옛날에 뻥튀기 장수 있었잖아요. 기계가 터지기 직전에 "뻥이요!" 놀라지 말라고, 전부 다 피하고 있으라고. 우리 주님이 지금 그렇게 하시는 것이에요.
상상이 되세요? 귀를 틀어막고 있는 우리에게 제발 좀 들으라고, 들어야 산다고, 안 들으면 두 귀가 먹을 만큼 큰 폭탄처럼 터지는 재앙을 내릴 것이니까 그렇게 되지 말고 지금 귀를 열고 들으라고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세요.
여러분 주변에 이렇게 외쳐 주는 분들이 있습니까?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싶은 소리로 외쳐 주는 가족과 지체가 있어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종 모든 선지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잔소리 외쳐주는 아내, 남편, 부모, 목자, 부목자, 목장 식구들, 사역자... 이들이 오늘 여러분의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입입니다.
지난주일에는 사역자들이 말씀이 안 들린다 그러더니 오늘은 또 하나님의 입이라 그러네요. 그럼 여러분들이 이럴 때 '저분은 논리가 없어' 이렇게 또 얘기를 하시겠죠. 정말 안 들린대요. 한 목자님은 "요즘에 목사님이 회개하셔서 내가 말씀을 좀 들어 보려고 하지만 하여튼 찬양까지 다 하고 말씀 시작했는데 나는 졸았네" 이렇게 계속 졸린다는 거예요. 너무 노력을 해도 졸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래도 이쁜 얘기는 "그래서 집에 가서 두 번을 들었다." 요게 중요해요. 그죠? 안 들린다는 걸 본인이 알잖아요. 나한테 말하지만 난 안 들리니까 이러지 않고 목자가 중요하긴 합니다. 그러니까 귀 먹은 거 다 푸시고요, 귀를 여시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듣는 게 사랑입니다.
근데 이제 우린 또 구속사로 므낫세를 좀 이렇게 띵크해 봐야 되잖아요. 지중해 연안에 강원도 땅덩어리만 하게 이스라엘이 있는데요, 그 위에 이렇게 무서운 강대국 앗수르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아래에는 그 유명한 애굽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래 싸움에 놀란 새우처럼 위에 붙을까 아래 붙을까 두려워하면서 이스라엘이 살고 있어요.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을 하고 앗수르를 배척하기로 한 것도 히스기야가 굉장히 믿음이 좋아서 그렇게 한 게 아니고요, 사실 앗수르가 바벨론 연합군에게 잠시 패배한 적이 있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때다 싶어서 반앗수르 동맹에 참여를 했어요. 그래서 열왕기하를 보면 반앗수르, 친앗수르 그것의 연속이에요.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친앗수르, 히스기야는 반앗수르, 므낫세는 다시 친앗수르... 이것이 어떻게 믿음의 척도가 되는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나 므낫세나 앗수르가 위에서 애굽을 치러 갈 때 유다를 거쳐 갈 수밖에 없으니까 항상 노심초사하는 거예요. 그 무서운 앗수르의 힘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걸 히스기야가 반앗수르로 겨우 10도 옮겨 놓는 개혁을 했는데요.
므낫세가 왕이 됐어요. 12살,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인데요. 구속사의 신앙도 없고요. 결국 므낫세의 통치 문제는 당장 경제 아니겠어요?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는 거예요. 므낫세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다음에 개혁을 하려고 그래도 금세 태업이 제자리로 가니까 모든 사람들이 편한 거 좋아해요. 가증한 산당 좋아해요. 히스기야가 없으니까 태업이 당장 풀렸어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원래대로 무서운 앗수르에 다시 빌붙기 시작했어요. 성경의 역사 이야기가 결국은 인간 이야기인 거예요. 내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교회와 나라의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 주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므낫세는 나쁜 놈' 이렇게만 생각하시면 여러분 적용이 안 돼요.
적용 질문이에요. 두 귀가 울려서 말씀이 들렸던 사건이 있습니까? 지금 의도적으로 귀를 막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끊지 못해 점점 퍼지고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첫째,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고요. 둘째는 남은 자임을 잊었기 때문이에요.
13절입니다.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줄과 추는 건축 도구죠. 수평과 수직을 재는 거예요. 건물이 제대로 서 있기 위한 기준을 잡아 주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이거를 심판의 도구로 쓰셨어요. 무너뜨리는 데 사용하셨어요. 사마리아의 죄, 아합의 집의 죄를 정확하게 재서 맞지 않는 것을 전부 앗수르의 손으로 멸망시키셨어요. 그 심판을 이제 므낫세가 다스리는 예루살렘에도 베푸시겠다고 예고하십니다. 근데 '우린 달라, 우린 다윗 왕국이잖아, 하나님의 성전이 있잖아' 이런 확신 하나도 안 통해요. 설거지하듯 남김없이 씻어 버린다는 거예요.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린다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도 하나님이 빚으신 인생이에요. 'Made by God'이라고 딱 찍혀 있어요. 품질 보증된 것이죠. 믿으시죠? 뭘 믿어요. 그런데 그 보증 수표 믿고 아무거나 막 담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씻어 엎음을 당하는 거예요. 열심히 담았던 것이 남김없이 비워지는 거예요. 14절 보세요.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남은 자는 심판 중에도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 주신 자예요. 북이스라엘이 망할 때 남유다가 남았고, 앗수르가 유다를 칠 때도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남은 자를 두셨어요. 유다가 망할 때도 남은 자를, 바벨론에 갈 때도 남은 자를 두셨어요. 남은 자는 기대할 수 없던 은혜를 받은 사람인 거예요. 근데 이 남은 자들까지 하나님이 이제는 버린다고 하세요.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긴다고 하세요. 남은 자가 더 이상 남은 자가 아니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더 이상 하나님의 것이 아니게 되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심판의 이유가 뭐예요? 15절입니다.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라."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어요. 남은 자들마저 심판받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에요.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어요. 하나님의 진노가 뭡니까?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 표현이에요. 어떤 죄악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심판받는 거예요. 우리가 때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 반드시 손을 보십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 백성이어도, 은혜로 남겨 주신 남은 자라도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남은 자들이 언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고 하십니까? 므낫세 때만 아니에요. 10년, 20년 전이 아니에요. 지금 아모리 족속을 봤듯이 출애굽부터 오늘까지 악을 행했다고 하세요. 출애굽이 무슨 사건이에요?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 사건이죠. 하나님이 보고 들으신 사건이고 돌보신 사건이에요. 자유를 주신 은혜예요. 그런데 바로 엄청난 은혜를 경험한 1세대부터 지금 이 므낫세가 다스리는 때까지 약 70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 백성이 한 일은 악을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한 것이라는 말씀이에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남은 자라는 것을 잊었다는 거예요. 은혜로 남겨진 자라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섬길 자유를 얻은 존재라는 걸 잊고 살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알았다면 어떻게 그 말씀을 그렇게 어길 수 있었겠습니까? 남겨 주신 은혜, 살려 주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니까 인생의 그릇에 거짓과 음란과 미움과 탐욕과 질투와 불평을 막 쓸어 담는 거예요. 남은 자임을 잊고 사니까 하나님 아닌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며 사는 거예요.
여러분, 이 남은 자가 바로 우리예요. 은혜를 받은 그 순간부터 우린 그 은혜를 잊어버려요. 예배드리다가 또 불편한 게 생기고 불현듯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면 내 마음에 온갖 악을 쌓는 거예요. 그러다 말로 행동으로 나오기까지 합니다. 이게 다 출애굽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악이에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시는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두 귀가 울리도록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리 지르십니다. 야단치시는 거예요. 제발 좀 들으라고! 깨어나라! 돌아서라고! 은혜를 생각하라고요!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자유를 잊지 말라고요!
우리 인생이 남겨진 인생임을 기억합시다. 환경이 남겨진 환경이 되면 그래도 생각을 좀 할 텐데, 남겨진 환경이 아니라 선발되고 높아지고 인정받는 환경이 되니까 남은 자라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런 환경을 원하고 바라며 사니까 남겨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우린 선발된 인생이 아니라 남겨진 인생이에요. 자랑할 인생이 아니라 회개할 인생이에요. 그러니 심판의 말씀이 들릴 때, 듣기 싫은 말씀을 자꾸 외쳐 주실 때 귀를 막지 마시고요. 남겨 주신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내 인생이 'Made by God'임을 믿으십니까? 가장 귀한 그릇임을 믿으세요? 인생 그릇에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끊임없이 습관적으로 쓸어 담는 악은 없습니까? 잊지 말고 날마다 기억해야 할 은혜는 무엇입니까?
자,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첫째로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둘째로 남은 자임을 잊었기 때문에. 세 번째는 우리 인생은 죄만 남기는 인생이에요. 죄만 남기기 때문이에요.
16절입니다.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하나님은 므낫세의 죄악에 대해 이미 충분히 밝히셨어요.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또 말해야 할 게 남았어요. 뭡니까?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어요. 예루살렘을 동에서 서까지, 남에서 북까지 무고한 피로 가득 채웠어요. 백성을 살려야 할 왕의 자리를 의인의 피로 물들인 거예요.
유대 전승에 따르면 므낫세가 살해한 무죄한 자 중에 누가 있었는지 아세요? 히브리서 11장에 이제 그 믿음의 사람들의 순교를 열거하면서 톱으로 켜는 것이 나오거든요. 므낫세가 이사야를 나무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해요. 바로 이것이 이사야의 순교를 가리킨다고 본 거예요. 성군 아버지의 영적 스승인데, 심지어 하나님의 종인데, 그런 선지자를 이렇게 잔인하게 죽인 게 바로 므낫세란 말이에요.이런 천인공노할, 이미 저주받은 죄보다 더한 죄를 쌓아 올린 거예요. 이 파괴력은 결국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뜨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므낫세가 이제 독재로 이어지는 거죠. 그 끝은 아무나 자신이 원하면 죽이는 거예요. 므낫세를 비롯해 모든 독재자들이 가는 길이죠. 그 독재는 결국 살육으로 변해요.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파괴력입니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 있으니 괜찮다고 여기며 시작했는데 어느덧 가장 거룩한 성전 안으로 들어왔어요. 나 몰래 나 혼자 즐기는 일이라며 끊지 않았는데 어느덧 자녀가 따라 하고 손주에게 이어지고... 우리 집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이웃으로 공동체로 나라로 이게 전염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그 증거 아니겠습니까? 5월 7일 금요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 예정된 스테인웨이 피아노 기부 감사 연주회에 그 기부를 한 분이 세상의 모든 낙태한 아이들을 위한 헌정곡을 작곡하고 연주하기로 했어요. 그분의 프로그램 노트에는 낙태로 세상을 떠난 모든 무고한 생명을 묵상하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어요. 그러나 임신 중단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는다는 학생들의 항의에 따라 그 프로그램이 삭제된 거예요.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잖아요. 그래서 이제 낙태죄는 법적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렇게 낙태죄가 통과되니까 법이 무서운 거예요. 이거 누가 통과시켰어요? 우리의 국회의원님들이 통과시켰잖아요. 차별금지법 또한 마찬가지... 이렇게 법이 한 번 되면은 모두가 이렇게 되는 거, 다음 세대 너무 무서운 거예요. 주님 도와주세요. 이 기도가 절로 나와요. 여러분 이런 것이 자유와 권리가 아니죠. 여성 인권이 중요하지만 여성 인권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소수 인권이 중요하지만 소수 인권만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근데 인권법이 자꾸 제정되면 어느덧 자유가 제한되고 권리도 빼앗기게 돼요. 오늘 "무죄한 자의 피"라고 했는데 므낫세가 흘린 피에 바로 이 태아가 포함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태아는 권리가 없습니까? 이 다음 세대의 가치관이 므낫세처럼 될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고 안타까워요. 정말 주님이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예요.
저는 제 그야말로 이 죄지은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어야 되잖아요. 그렇지만 그 죄를 죄라고 내가 고백을 했잖아요, 이게 중요한 거잖아요. 그러니 누가 므낫세를 향해 '노' 할 수 있겠어요? 무조건 우린 '예' 할 수밖에 없어요. 칭송하고 찬양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가장 끔찍한 악을 저지르는데, 세상에서 찬양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므낫세가 부러우신가요? 므낫세처럼 되고 싶으신가요? 정말 불행한 지도자는 아무도 '아니요'라고 말해 주지 않는 지도자예요. 비난을 하나님의 책망으로 달게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바른 지도자예요. 싫은 소리를 잘 들어야 돼요.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400년 지나고 광야를 지나며, 광야에서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으니까 그때는 모세의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왜? 그냥 저절로 겸손해졌으니까요. 근데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끝나고 사무엘서에 들어가면 이제 다 정복 전쟁이 끝났으니까 우리도 인간 왕을 달라 그래요. 하나님이 왕이신데 배부르고 등이 따스해지니까 필요한 것들이 많아져요. 내가 우상처럼 생각하는 그걸 다 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왕은 너희를 압제하고 착취할 것이라고 경고해도 떼를 쓰는 기도를 하니까, 호세아 13장 11절에 "내가 분노함으로 왕을 주고 진노함으로 폐하였노라." 여러분 이런 기도 응답은 받으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너무 떼를 부리니까 하나님이 떼 부리는 기도도 응답하실 때가 있어요.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왕정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결과는 필연이었어요. 그래서 내 삶의 결론이라고 늘 얘기하잖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금보다도 더 귀한 그런 기도예요. 광야는 말씀이 꿀송이처럼 들리는데 부요해지니까 하나님 말씀도 싫은데 사람의 싫은 소리, 야단치는 소리를 어떻게 듣겠습니까? 전혀 못 들어요. 부자 청년도 "네 재물로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 하니까 예수님을 불편해하면서 떠났어요. 예수님도 불편한데 사람들의 말은 어떻겠습니까?
남자들은 정말 사과를 못 해요. 우리나라는 특히 유교가 강하기 때문에 더욱더 사과를 못 해요. "당신이 옳다" 하는 고백은 내 죄를 보기 전에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가치예요. 그러니까 그런데 그 왕들 중에서 사무엘하 12장 13절에 보면 다윗 왕이 죄를 졌지요. 근데 와서 나단이 책망하니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고백을 하니까, 그 한 절에 즉시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라고 해요. 죄가 없는 게 아니에요. 죄를 회개해야 돼요. 방향을 주님께 돌리니까 "여호와가 내 종 다윗"이라고 기뻐하신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고백이에요. 왕이 되면 자기 죄를 보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든 거예요.
근데 다윗이 그 고백을 했다는 거예요. 어느 나라 왕이 "전하, 그렇게 독재하시면 안 됩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습니다"라고 간언하는 부하의 말을 듣고 "네 말이 맞다. 내가 잘못했다" 할 왕이 있겠어요? 아주 그런 사람은 거의 없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조금이라도 부여하면 목장에서 부부 관계에서 양육을 못 받아내요. 하나님은 특출한 왕들을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야단을 잘 맞는 다윗을 최고의 왕으로 인정하십니다.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도 그 장자 탁월한 르우벤이 아니라, 너무 수고한 요셉도 아니고, 며느리하고 동침한 유다가 사과를 했잖아요. 며느리 보고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 이 죄를 고백하고 사과한 유다를 예수님의 조상으로, 다윗의 조상으로 올려놓으시는 거예요.
창세기 38장 26절, 사무엘하 12장 13절... 성경 구절에 딱 나와 있던 이 죄를 고백한 유다와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찬란하게 올린 줄 믿습니다.
제가 여자로서가 아니라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그렇네요, 제가 틀렸네요, 당신이 옳아요" 이걸 비교적 쉽게 하니까 우리들교회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저는 사과를 잘하죠. 사람이 부유할 때는 인간에 대해서 몰라요. 인간에 대해서 모른다는 거는 죄에 대해서 모른다는 거예요. 근데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거보다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안 깨달아지니까, "당신이 옳다"가 안 되니까 부부간에 문제가 일어나고 회사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이제 나라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하도 "내가 죄인이에요" 못 하니까 오늘 다 같이 복창을 하자고. "내가 죄인이에요!" 큰 소리로 떠들어 봐요. "내가 죄인이에요!" 이번 주에 목장 가서, 집에 가서 "내가 죄인이에요, 당신이 나보다 옳아요"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가장 긴 시간 왕좌에 앉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므낫세의 통치를 성경은 어떻게 기록합니까? 17절에요.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55년 동안 므낫세가 한 일이 많겠죠.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그런 거 하나도 기록하지 않아요. 남은 사적, 행한 모든 일...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대신 업적 목록에서 뺄 수 없는 게 뭐예요? 17절, "범한 죄"예요. 므낫세 = 죄라는 거예요. 그 오랜 세월 왕으로 살면서 남긴 거라고는 죄뿐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므낫세만 그럴까요? 살면서 죄만 남기는 것은 므낫세만이 아니고요, 므낫세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높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똑같아요.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모든 인생의 욕심이에요. 하나님 자리에 내가 앉는 것. 가장 위험한 우상은 바로 내 자신인 거예요. 자기애가 우리 다 있어요. 잘 살아보겠다고... 얼마나 므낫세가 잘 보였으면 55년이나 장기 집권을 했겠어요? 그죠? 그러면 그때는 정치 잘한 왕이 아닐까요? 55년 동안 전쟁이 없었으니까? 우린 진짜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에 있든지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죄만 남길 수밖에 없어요. 죄인인데 죄 아니면 또 뭘 남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남기는 건 죄뿐이에요. 그렇다면 므낫세의 최후는 죽음의 심판뿐이겠죠.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반전이 있어요. 병행 본문인 역대하 33장을 보면 놀라운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므낫세가 귀를 딱 막고 있다가...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요? 33장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드디어 므낫세 인생에 망하는 사건이 왔어요.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어요. 게다가 그들에게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어요. 포로가 된 거예요. 14절에 이 노략을 당한다는 말씀이 므낫세에게 벌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근데 이상하게 앗수르에게 끌려갔다고 하지 않고 바벨론으로 갔다고 하네요. 물론 당시 앗수르가 바벨론 지역까지 통치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이거는 예고예요. 히스기야 때 "네 아들이 바벨론 환관으로 잡혀가리라" 했잖아요. 약 60년 뒤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지요. 그 시작을 므낫세가 한 거예요. 성경 말씀 기가 막힙니다. 그만큼 므낫세의 죄악이 컸다는 거죠.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던 므낫세에게 드디어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임했어요.
므낫세는 어떻게 했을까요? 12절, 13절요.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훌륭한 아버지도 무시하고 하나님 무서운 줄도 모르던 므낫세인데 인생 기반이 무너지는 환난을 당하니까 하나님을 찾네요.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네요. 하나님께 기도하네요. 50년 동안 꼿꼿이 세웠던 목을 꺾고 하나님께 항복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셨어요. 받으셨어요.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시고 왕위를 회복시키셨어요. 그제야 므낫세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어요.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50년 말 안 듣는 아이 때문에 50년 속을 끓이셨지만 마지막 순간에라도 항복하고 회개하면 영접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등지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50년이 복일까요?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 품에 안긴 그 잠깐이 복일까요?
그 50년은 죽음과 함께 끝나지만 그 짧은 시간은 죽음 이후 영원히 이어질 진정한 복인 거예요. 50년은 영원에 비하면 순간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므낫세는 다른 유다 왕들처럼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예루살렘에 묻힐 수 있었어요. 18절입니다. "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므낫세는 다윗의 이름이 있는 왕의 무덤에 묻히지 못했어요. 회개했지만 그 악행에 대해서는 져야 할 책임이 있었던 거예요.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했어도 아이는 죽었어요. 죄는 용서하셨지만 죄값은 치러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응답인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 왕조가 이어지게 하셨어요. 므낫세도 마찬가지로 죄의 책임을 물으셨지만, 마태복음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름이 올라가게 하십니다. 정말로 분에 넘치는 구속사의 은혜예요. 하나님은 왜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구속사를 이어가시는 신실하심 때문이에요. 신실하신 하나님이 므낫세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악하고 악한 므낫세도 구원을 받는 것이고요. 유다가 멸망한 뒤에도 다윗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이고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이고요. 저와 여러분도 그 믿음의 계보에 이름이 올라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끈질긴 사랑으로 오늘도 우리 두 귀를 울리는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기록된 말씀만으로는 듣지를 않으니 외치는 선지자들을 통해 찾아오세요. 근데 그 외침도 전혀 듣지 않으니까 드디어 힘든 사건과 사람으로, 쇠사슬에 끌려가는 환난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귀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면 두 귀를 조금 세우시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들리면 어떻게 해야 돼요? 므낫세가 크게 겸손했다고 하잖아요. 항복해야 해요. 내 뜻, 내 생각, 내 감정 다 내려놓고 "주님 말씀이 100% 옳으십니다"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땅에서 가장 큰 겸손을 보이신 분이 누구세요? 바로 예수님이세요.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항복하신 최고의 겸손의 사건이에요. 이것이 우리를 살리는 울림입니다. 구원의 울림, 사명의 울림이에요. 이런 울림을 받을 때 므낫세 같은 우리도 구속사를 써 내려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내 우상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사람은 누구예요? 주변에 '예' 하는 사람만 있습니까? 아니면 외쳐 주는 사람도 있습니까? 지금까지 내 인생을 한 단어로 기록한다면 무엇입니까?
면접을 본 어떤 집사님이 계신데, 2차 면접 시에 회장님의 첫마디가 "나는 사람을 보면 보이는 게 있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를 안다고 생각하시나' 하면서도 이제 긴장을 했답니다. 회장님이 나를 뽑는 것을 고민하시는 것 같길래... 직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 관리를 하는 게 염려가 있다고 하셨는데, "오랜 직원들을 제가 공을 들여 관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씨 웃으시며 "근데 경험이 좀 부족하지 않냐" 물으셨대요. 그래서 "경험치라는 게 사건을 많이 겪는다고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사건 가운데 내가 느껴야 경험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얘기했더니 눈빛이 변하시더니 고민하고 연락하겠다고 하셨는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는 거예요. 우리들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가면서 위기의 순간에 말할 부분이 생각났다는 거예요. 여러분, 학벌 가지고 이런 답을 하기는 어렵죠. 하나님은 창조적인 분이세요. 제가 이번에 "십자가는 느끼라고 주는 거"라고 그렇게 새벽기도에서 얘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성경을 구속사로 제대로 읽는 사람은 정말 최고로 성공한 사람 맞아요. 언제나 해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므낫세는 그 좋은 학벌과 집안과 재물 때문에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사람이에요. 그것도 마지막에...
여러분의 부모가 므낫세입니까? 자녀들이 므낫세입니까? 히스기야 같은 성도님들이 므낫세 같은 자를 구원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모두 므낫세 같은 자들이에요. 이제 "귀가 막히다"를 그만하고 이렇게 돕는 자들이 되니, 두 귀가 울리는 가운데서도 므낫세의 회개를 보게 하십니다.
이번 주도 전혀 안 믿던 남편분이 마지막에 "믿으십니까? 예수 믿으십니까?" 내내 "아멘, 예" 그 얘기만 해도 우리는 저... 이게 보통 말이 아닌 거예요. 그리고 이제 영접하고 가셨다고 들었어요. 우리의 므낫세들이 줄지어 있어요. 그래도 이 므낫세를 숨 죽이시고 보고 계셨다 그랬잖아요. 그렇게 주님처럼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도 본을 보여야 돼요. 숨 죽이고 날마다 기도를 하는 거예요.
요즘 에스라 묵상이라... 제가 10년 전에 아하와 강에서 금식을 선포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이제 집사 출신인데 목회자 세미나를 하려니까 너무 두려웠어요. 목사님들이 과연 오실까? 그래서 다 같이 3일 금식하시자고 그래서 온 교회가 기도했어요. 근데 벌써 10년이 되었는데 이번에 400명이 신청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에스라 본문이 또다시 나온 거예요. 근데 에스라가 그냥 날이 갈수록 죄를 자복하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다음 세대잖아요. 이 불신 결혼 때문에 막 금식하며 기도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할 것이 이제 목회자들이 변해야 되는데요. 다음 세대를 위해서 불신 결혼은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에스라 보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어저께는 불신 결혼자 명단까지 넣었어요. 그러니까 이 일이 "너희들에게 이 끊어내라" 그러잖아요.
그 이혼하라는 소리 아니고 끊어내는데, 끊어내는 일이 너무 힘들지만 "너희 죄보다 형벌이 가볍다" 그러잖아요. 그렇게 정말 세상에 이런... 아 정말 좋은 것들에... 그러면 남은 것이 있대요. 구원이 남는다 그러잖아요. 우린 구원이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막 속옷과 겉옷을 찢으며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막 두 번이나 "에스라가 기가 막혔다"는 표현인데 기가 막혔다... 느헤미야도 이 불신 결혼에 대해서 책망하고 저주하며 때리고 머리털을 뽑고 "안 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라"고 하죠.
그러니까 이 불신 결혼의 문제는 아주 심각해야 하는데, 여러분은 다 인권과 인격을 논하며 "아유 나중에 돌아오겠지 뭐" 하시는데... 그거가 아니라는 거. 저는 그냥 불신 결혼, 교회 개척할 때부터 불신 결혼, 말씀 묵상, 이런 동성애 이런 것들을 기도를 너무나 했어. 그러나 "나중에 돌아오겠지" 하시려면 나중에라도 돌아오라고 이 문제만큼은 심각하게 외쳐야 되는 거예요. 근데 지금 20년 동안 우리들교회가 심각하게 외쳐서 잘 사는 걸 보여 주시잖아요. 이게 열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진짜 이 시대에 좀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에스라가 본을 보이면서 금식했다는 건 아주 심각하다는 뜻인데, 제가 목요일 날 에스라가 또 금식하는 얘기를 들었나 종일 생각해 보니까 제가 이제 금식을 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을 위해서 대신 깨달아 드리고 제가 대신 회개하고... 집집마다 지금 불화가 있고 정말 또 나라도 그렇고 그냥 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제 3일 금식을 금요일부터 시작해서 오늘이 3일째인 거예요. 그런데 정말 어저께만 해도 도저히 오늘 못 할 것 같았어요.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몰라요.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3일까지 다 마쳐야 우리들교회가 다 기도가 응답받을 거 같은 거예요." 제가 그러면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제가 이거를 감당하지 못하면 어떡하겠어요. 얼마나 기도를 했나 어저께 진짜 거의 시체처럼 누워 있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회개하라고 제가 이렇게 하는 거지 지금 뭐 하려고 이렇게 하겠어요. 다음 세대가 너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근데 오늘 1부, 2부, 3부를 통해서 1부보다는 2부, 2부보다는 3부에 하나님이 막 힘을 주시는 거예요. 힘 주시는 게 보이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나는 이 사람하고 못 살아" 그런 사람은 3일 금식을 해 보세요. "나는 이 사람과 못 살아, 나는 이 직장 안 돼" 그럼 3일 금식을 하시고 내가 대신 깨닫고 대신 회개하려고... 정말 어저께 "이틀만 하면 되지 않아? 이틀만 하면 되지 않아?" 근데 너무 진짜 감사하다는 생각이 너무 드는 거예요 제가. '아 하나님이 나를 지금 도와주시는구나. 이 일이 필요한 일이었구나. 중보가 나를 돕는구나' 하는 이 생각이 너무 들어서, 여러분 저도 하는 금식을 여러분들이 왜 못 해요? 하실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에게 이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때도 말씀대로 금식했고 이번에도 말씀대로 금식을 했어요. 성경이 다 에스라 금식하니까...
제가 말씀 맺을게요. "두 귀가 울리리라."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두 귀가 울릴 말씀을 주실까요? 우리가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에요. 남은 자임을 잊었어요. 내가 은혜로 얼마나 남은 자인데 그걸 잊었어요. 우리는 이 땅에서 죄만 남기고 갈 인생이에요. 그래서 그냥 우리에게 오늘 나팔 소리처럼 회개하라고...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지만 주님은 날 위해 또 늘 비신대요.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찬송: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주님의 말씀을 귀를 열고 듣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내가 남은 자임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내 죄를 보면 "내가 죄인입니다" 이걸 좀 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불신 결혼은 총체적인 악이에요. 결혼은 삶이잖아요. 결혼하는 그날부터 요즘 이런 MZ 세대에 그날부터 말이 안 되는 집이 많아요. 인간이 100%인데 누구를 믿어요. 그래도 우리가 믿음으로 결혼하면 중재자 예수님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불신 결혼은 안 돼요. 진짜 진짜 안 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내 자녀와 말이 안 되는데 어쩌냐? 그 자녀들을 위해서 우린 다른 자녀를 섬겨야 되는 거예요. 이타적으로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야 돼. 50년 동안 안 돌아와도 우리는 그 모습을 보여야 돼요. 우리 인생이 참 50년 동안 힘들어도 내가 예수 믿고 천국에 가면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가잖아. 그러므로 내 자식만 쳐다보고 지옥을 살지 말고 그렇게 다른 자녀 잘 섬기면 여러분들에게 엄청난 십자가의 지혜를 허락하실 거예요. 평강을 허락하실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성군이 다 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이제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가 이어질 수 있도록, 큰 겸손의 선량들이 뽑힐 수 있도록 다 같이 주님 이름 부르며 기도합니다. 주여!
(기도)
주님, 예전보다 부해졌다고 두 귀를 막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안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남은 자의 은혜를 잊고 이제 "국민을 사랑하기에 , 친앗수르 할 수밖에 없다"고 타협하는 므낫세가 저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들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말씀 묵상 가정중수이런것이 훼방 받을가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주님 참으로 므낫세가 이제 또아리를 틀고 있어요. 그러나 에스라 한 사람의 자복으로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회개할 수밖에 없어요. 주여, 이 회개... 1년의 회개를 모아서 3일 금식하면서 다시 한번 항암 했을 때 고통이 떠오르고 아픈 사람들을 또 체휼하게 됐습니다. 주님 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양이 차지 않아도 저의 회개를 보시고 우리를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살려 주시옵소서.
정말 물질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다 우리 죽을 것 같은데, 여러분들을 위해서 제가 대신 회개하오니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주님, 저 한 사람이 서 있으면 여러분도 살리고 교회도 살리고 나라도 살려 주실 줄 믿어요. 이 한 사람 저 한 사람의 회개가 전염이 되어서 우리 많은 성도들이 회개 역사가 일어날 때 우리나라가 살아날 줄 믿습니다.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기도를 멸시치 않을 줄 믿습니다.
주여, 다음 세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님 나라가 없는데 어떻게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주여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 정말 창자가 끊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 다음 세대를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기도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주여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자녀들 다 살려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두 귀가 울리리라"는 이 말씀을 깨닫고 저희들의 신앙 고백으로 드린 이 헌금을 흠향하여 주시옵시고 이 말씀이 들리게 하여 주시옵시며, 이제 하나님께는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는 줄 것만 있도록 저희들의 회사와 사업과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물질과 건강과 이제 관계와 참으로 목장에 기름을 철철 부어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아프신 분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신 분들... 아버지 하나님 그 아픈 부위에 손을 얹사오니 주여 주여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아픈 데서 우리가 회복이 되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다. 주여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영상 출처: 우리들교회 공식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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