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마가복음 16:1-11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 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설교 요약] 그가 살아나셨다!
김양재 목사 - 그가 살아나셨다!(마가복음 16:1-11)
세속사와 구속사는 전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사실 이 세상과 함께 할 수 없는 가치관이에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은 악하기 때문에 심판을 몰라요 심판을 모르면 회개는 더더욱 몰라요 그러면 악한 이 세상밖에 모르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되어서 악착같이 공부하고 벌고 뺏고 쓰고 모으고 죄의식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제 누릴수록 죽음은 끝이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부활할까 봐 겁나는 이런 가치관을 이 세상 가졌어요 그래서 코웃음을 쳐요
이 광대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춰져 있어요 그래서 나의 육의 시력으로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해달별이 떨어질 때 이때 인자가 구름 타고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하셨죠
이 얘기는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진다는 거예요 이 말은 점으로 낮아지신 예수님의 렌즈를 그때부터 끼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예요 십자가 없이 부활을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부활은 이론으로 연구해서 믿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에요 이 세상은 수많은 논리로 유명한 사상가와 학자들이 부활을 증명하고자 하지만 다 실패했어요
왜냐하면 논리는 또 다른 논리가 나오면 바뀌잖아요 자기들끼리 또 싸워요
부활은 생명인데 생명을 어떻게 논리로 증명하겠습니까? 그래서 생명은 생명으로밖에 증명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증명이 아니고 증인이 필요한 거예요 그가 살아나셨다에 증인은 무엇이고 이게 누구에게 보일까요?
첫째로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십니다
1절 2절에요 안식일이 지남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그 무덤으로 가며 1절에 안식일이 지났다 그랬잖아요
여러분들 주님 너무 사랑해 가지고 무덤 자리를 봐두었다 그랬어요 그냥 아리마대 요셉도 그냥 그 무덤에 인봉하고 묘지 다 내 주었지만은 그거를 보아두었던 그 여자들이
자 안식일이 지났어요 2절에 특히 안식 후 첫날 모든 복음서에 다 나오는 아주 중요한 첫날인데
왜냐하면 안식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고요 이때부터 구약의 그 율법의 안식일에서 신약의 부활을 기념하는 생명의 주의 날로 바뀌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날이 바로 부활절이고 그러니 날마다 주일은 부활절이고 따로 부활절 설교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매 주일이 부활절인 거예요
이 역사적인 부활절의 주인공은 오늘 1절에 보니까 막달라 마리아라고 해요
왜냐하면은 마태복음에 보면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는 말에서 복수를 써야 되잖아요? 근데 이제 원어에 보면 3인칭 단수를 쓴 거예요 그러니까 여인들이 왔지만 주인공은 부활해서 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뜻이에요
그럼 왜 주인공이 됐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는데요 그래서 주님 때문에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그 예수님을 다 저주받았다고 할 때에 이 사람은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그 무덤으로 갔어요
로마 병정의 노리개 창기로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가 주님 때문에 살아났는데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그리고 해 돋을 때 가려면 훨씬 더 일찍 캄캄할 때 출발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실에 이 땅의 사랑도 죽음 같이 강하다고 아가서 8장에 나오죠 그렇게 주님 사랑해서 떠났는데 3절에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오" 하더니 아 그렇게 새벽을 뚫고 담대함으로 갔는데 부활체인 예수님은 믿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이 돌문 100kg가 넘는 이 돌문을 누가 굴려 주리오 하면서 이제 염려 근심을 하는 거예요 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하신 정말 말씀 맞고요 주님 사랑하는 것도 많은데 염려 근심이 많아요
저에게도 누가 돌을 굴려 주리오 하는 이런 걱정이 믿음의 분량대로 시기마다 평생 따라다니는 걱정이기도 해요
두려워하지 말라가 성경에 365번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아 마리아 중에는 제자들의 멸시를 무릅쓰고 노동자 1년 품삯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들고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베다니 마리아가 나오잖아요 그녀는 나사로의 죽음을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을 겪으면서 부활에 대해서 양육을 미리 받았어요 한 번 그러니까 3일 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다는 이 말씀이 액면 그대로 믿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미 살아나시는 걸 믿었기 때문에 자기가 장례까지 치렀기 때문에 시체를 보러 가지 않았어요 주님은 이 마리아를 살아 계셨을 때 세상 끝날까지 기념하여 전파하게 하라는 최고의 칭찬을 하셨어요 이제 말씀을 듣던 실력이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근데 마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안 갔나? 생각을 해 보면요 우리가 이 세상은 예수님하고 대적이잖아요 부활의 주님하고는 대적이에요 우리가 예수님도 바울도 다 죽이려고 그러잖아요?그죠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살아난 나사로를 기뻐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죽이고자 했잖아요 요한복음 11장에 살아났다 그러니까 죽이는 모의가 시작이 됐어요
그래서 베다니 마리아는 공적인 자리에 안 나타나는 적용을 했다고 보여져요 안식 후 첫날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녀가 예수님의 무덤에 안 가는 것이 쉬웠겠어요? 가는 게 쉬웠겠어요? 안 가는 것이 훨씬 힘들었겠죠 자기 너무 사랑하는데 그죠? 그러니까 이거는 그냥 안 갔다가 아니에요 그러나 이미 살아날 걸 믿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주님이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부활의 현장에 꼭 안 가도 돼요 이미 믿었기 때문에 올림픽 공원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우리 집 옆이라면 갈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구원의 일이 있다면 굳이 안 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팔복산 기도회에 와야 되겠지만 더 중요한 누가 아프다던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생기면은 안 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데 안 온 거는 이상한 거예요
이렇게 부활을 믿기에 부활의 현장에 안 오는 이런 모델도 필요한 거예요 그러나 이미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는 베다니 마리아보다는 인류를 위해서 주님은 부활의 증인으로 그녀를 택하지 않으시고 우리하고 비슷한 가까운 너무 부족한 그러면서 막 어린아이 같잖아요? 막 주님의 품으로 파고드는 열성분자 그래서 보니까 믿음이 아리까리하고 가장 낮고 낮은 창기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증인으로 택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이렇게 막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걱정하면서 4절에 오니까 눈을 들어본 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큰 거예요 돌이 치워졌다는 건 과거 완료예요 내가 눈을 들었을 때 이미 돌이 치워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사복음서가 지진이 났다 천사가 굴렸다 뭐 여러 가지 현상으로 묘사했지만 사복음서 기자가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거는 빈무덤이라는 거
정말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거예요 이것이 부활의 진정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갈 마음만 있어도 심히 큰 돌을 이미 제거해 놓고 계셨어요
복음 전할 때도 마찬가지 같아요 근데 다들 그 사람은 안 돼요 이런 경우 많이 있잖아요? 특별히 제자들이 이번에 그랬네요 제자들이 오지도 않아요 예수님의 돌아가신 무덤에 그러나 염려하면서도 간 여인들이잖아요 그러니까 큰 돌을 제거해 주시고 그리고 이제 그 여인을 양육해 주시죠 이럴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아예 믿지 않고 가지도 않는 제자들보다는 이 여인들이 이제 훨씬 나은 거죠
적용 질문이에요 여러분은 부활이 확실히 믿어지세요? 머리로만 믿어지세요? 부활의 증명을 원하세요? 증인을 원하세요? 날마다 묘지 찾아가서 누가 돌을 굴려 주리오 하면서 죽은 자를 살핍니까? 그거보다 더 중요한 구원의 일이 있다는 것을 분별하세요?
그가 살아나셨다 부활의 증인으로 하나님은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제 보이셔요 선택하셨어요
그러나 이 부활의 증인에게는 두 번째 양육이 필요한 거예요
5절 6절입니다 무덤에 들어가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이렇게 양육을 해 주세요
우리가 부활을 왜 믿기가 힘든가 하면요? 부활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이 땅에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럼 예수님도 창조주이시잖아요 그래서 아무도 부활하시는 그 직접적으로 예수님이 막 이제 살이 되고 뼈가 되고 사람이 됐다 이 장면을 아무도 못 본 거예요 볼 수도 없고 본 사람도 없어요
나사로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 사건은요 예 사람들이 직접 보았잖아요 살아났어요 근데 그들은 잠시 후에 다시 죽었어요 그들의 살아남은 병 고침 정도의 그냥 살아남이었어요
예수님은 부활체이기 때문에 이 돌을 굴리지 않아도 나오실 수 있는 분이에요 양육하려고 지금 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여인들은 몸의 부활만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 전무후무한 일인 거예요 그분만 부활의 실체가 되시는 거예요 이건 정말 창조주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창조적인 부활인 거예요 진짜 부활을 믿으면 사람이 창조적이 되게 되어 있어요
돌이 치워져 있다고 했는데요 그러면 이때라도 부활을 믿야 되잖아요? 근데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지금 믿지 못하는 증거가 여전히 오늘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기 때문인 거예요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은 거죠
그러니까 내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증거가 계속 무덤과 시신을 찾아가는 거예요
요한복음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앞에 계신데 동산지기인 줄 알고 슬퍼했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무덤에 집착해요 시신에 집착해요
이제 사별한 후에 아름답고 비싼 꽃을 들고 날마다 묘지를 찾아가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마릴린 먼로의 두 번째 남편인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전설적인 야구 선수는 9개월간 결혼 생활을 했는데요 이 마릴린 먼로가 6.25 전쟁 후에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병사를 위해서 전설적인 위문 공연을 하러 와서 아주 질투심이 폭발했어요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먼로를 그리워하는 거예요 세 번째 남편은 아서 밀러도 유명했지만은 먼로 사후에는 조 디마지오는 매주 세 번씩 무덤에 찾아가서 꽃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혼 6개월 결혼은 그 이후는 여든네살까지 혼자 살면서 먼로를 그리워했다는 것이에요 그 죽을 때는 이제 먼로를 만나겠구나 이러고 죽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날마다 그 시신을 보고 위로를 이렇게 얻으려고 한 거예요
이 사람이 전설적인 야구 선수인데 그 인생의 허무함을 전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했을 것인데 얘기가 많아요 묘지가 가깝다면 네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을 날마다 출근하는 분도 많아요 시간은 예수님인데 이 땅에서 시체 찾아 삼만리 하면 아까운 이 땅의 시간을 사명 때문에 쓰는 게 아니고 무덤에서 다 허비하고 있는 거예요 이거는 시간은 생명이고 또 생명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이 시간 낭비는 예수님을 천히 여기는 거예요 예수님을 천히 여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양육해 주시나요? 놀라지 말라 마태복음에는 무서워하지 말라 누가복음에는 두려워 막 그냥 두려워해서 살아나셨다는데 모두가 두려워하는 거예요 아주 용맹스런 병사들조차도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서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부활도 온전히 믿지 못한 이 여자들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죠? 팩트를 좀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근데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여인들에게만 놀라지 말라고 양육을 해 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은혜예요 잘나서가 아니잖아요? 여러분 양육 받는 게 얼마나 은혜인지 모르실 거예요 양육자가 좋고 나쁘고 이런 거 상관없어요 양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택자로 인정해 주신다는 생각에 우리가 다 교만하기 때문에 여기서 10년 20년 설교 들어도 그 일대일로 받는 양육 이거를 경험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부활을 경험하지 못할 거예요 제 설교 아무리 혼자 들어서 혼자 나 홀로 다방에서 들어서 달라지지 않아요
그래서 이 여인들에게 이렇게 양육을 해 주신 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마리아야 요한복음 20장에 불러 주시잖아요? 그러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만 집착하고 살아나신 예수는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그들이 그리스도로 믿은 부활의 주님은 그냥 나사렛 사람이고 가장 저주스러운 십자가 형으로 처형받은 죄수 중의 죄수인 거예요
어떻게 그 사람을 구세주로 믿을 수가 있겠어요? 인간은 불가능한 거 오직 부활의 경험을 해야 예수가 믿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날마다 수치의 회개의 간증을 하면 여러분 가운데는 와 여기 너무 이상해 저 찌질하다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분들이 나타난 것으로만 평가를 하니까 그 어려서부터 교회 다녀도 잘된 간증만 들은 것 같아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부활의 경험이 없으면 이렇게 솔직한 수치의 간증을 인정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이야기예요
어찌 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한 이 사건이 예수님의 계보에 오른다는 것이 믿어질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제자들도 아무도 못 믿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렇게 양육을 받았는데도 부자 청년이 반듯하게 율법 다 지키고 계명 다 지키고 십일조도 했다고 부자 청년이 재물 하나 내놓지 않았다고 구원을 받지 못하면 제자들이 그러잖아요 마가복음 10장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으리요" 이러잖아요 제자들의 결론이 그러니까 제자들도 구원받으면 부자 청년처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예수 믿으면 부자 청년처럼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고정관념이야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 여인들은 그래도 그만큼 낮아져 있기 때문에 그래도 머리로도 메시아로 알고 찾아왔어요
그런데 그 부자 청년은 "선한 선생님"이라 그러잖아요 본인이 하나님 위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그래도 이 여인도 아직 부활의 실체는 몰라요 왜냐 그거보다는 인간적인 사랑이 더 앞서 있는 거예요 조 디마지오처럼 인간적인 사랑이 80년을 갈 수도 있더라고요 사랑이라고 착각하면 안 돼요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라고 하시잖아요 그 육신이 마음이 성경에 둘 다가 다 나와 있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 그냥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왜냐하면 가난하면 천국을 보기가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있잖아요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이게 가르는 게 아니고 유대인도 제자들도 여인들도 우리도 사실 다 똑같아요 지금 똑같아요 제자들도 처음에는 도망갔잖아요 근데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 증인을 통하여서 여인들의 증거를 통하여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특별한 체험을 했는데 믿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알아본 게 아니고요 택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자랑할 게 하나도 없어요
저 사람은 안 돼 그냥 죄로 놔두세요 이 죄는 틀렸어 저 죄는 좋아 이렇게 얘기할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뭐라 양육해 주십니까? 계속해서 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만 찾는구나 그게 아니고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이건 과거 수동태 직설법이 사용되었다는 거는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으키심을 받아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고 따라서 무덤이 비워졌다는 것인데요 이건 대단한 기독교의 우월성과 탁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이제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그냥 그 무덤을 다 성지로 숭배하고 있어요
그런데 기독교의 창시자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잖아요 숭배받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의 광대하심이 드러난 거죠 예수님이 위대한 게 아니고 그래서 죄로 인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이 없는 거예요 예루살렘 가면은 예수님을 경배하는 게 아니고 전부 다 이단들이 들어와서 판을 쳐 예수님이 실종이 돼서 아무 데도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 멸시 받는다고 제가 그랬잖아요 그죠?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타 종교와 구별되는 결정적 차이인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의 자랑은 화려하게 꾸민 무덤이 아니라 초라하게 비워진 빈 무덤인 거예요 그러므로 택자가 아니면 누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이 특별한 경험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게 너무 어려운가요? 택자는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 그랬으니까 아주 또 쉬운 일이기도 해요 근데 가난하고 마음이 험블하고 이러면은 주님이 필요하지만 부자 권세자들은 80년이 지나도록 뚫고 들어갈 수가 없어요
기독교의 나라라고 해도 그러니까 그 제가 설교한다고 여러분들이 택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만세 전부터 정해졌으니까 택자 그러니까 제가 잘난 척할 것이 조금도 없어요 오늘 그 한 택자가 주님께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놀라지 말라" 그럼 뭔가 성경은 모두 다 제 얘긴데 항상 모든 성경은 다 제 얘기예요 저 이제 기가 막힌 거야 그럼요 성경이 제 얘기겠어요 여러분 얘기기도 한 거지요 안 그래요 ?
저 역시도 하루 만에 간 남편의 죽음은 이 땅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잖아요 그런데 구원은 그거보다 더 놀라운 일이더라고요 이거잖아요 주님이 죽으셨는데 그보다 놀라운 구원이 있는 거예요 날마다 말씀을 보지만 순간적으로 이 여인들처럼 저도 죽은 예수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루 동안은 이 구원됐다는 사실보다는 죽음 자체에 관한 인간적인 놀람이 더 앞섰어요 내가 지금 서른일곱 살인데 내가 과부 사는 이 편견에 이 심히 큰 돌을 누가 굴려 줄까? 그러나 하루 만의 진리의 성령님의 도움으로 창조주가 말을 걸어 주셨기 때문에 해석이 되어 부활의 은혜가 임하게 된 줄 믿습니다
그동안 들어두었던 말씀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살아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여전히 막달라와 베다니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제 신앙도 이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한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고 살아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명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이걸 믿어야 돼요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죽은 남편 찾지 말아라 그가 구원받고 부활했기 때문에 무덤에 있지 않다는 걸 제가 알았어요 어떻게 해요? 말씀으로요 제 인생은 말씀이 저를 인도해 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것은 창조주와 대화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의 인도함은 어떤 수천 명의 의사 심리학자 상담가와 비교가 안 되는 거야 비교가 물론 상담받고 병원에 가야 돼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현대의 사회 문제가 그렇게 많은데 그 모든 것의 답은 성경 밖에 없고 성경만이 문제 해결점이 된다는 것을 저는 사대째 모태 신앙으로 천국 갈 때가 가까운 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남편이 간 날에 그 말씀은 40년이 되어오도록 저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고 사명으로까지 인도하십니다 그까짓 말씀 하나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냐고 하실 분이 있겠지만 저도 남편이 죽은 그날 여전한 방식으로 하던 큐티 하나님께 물어보면서 이렇게 묵상한 것이 이렇게 쓰임받을 줄 상상도 못 했어요
제가 신학도 안 했고 목사도 아니었는데 제가 창조주 하나님이 살려 주신 얘기를 하잖아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었어요 이것이 부활의 은혜예요 이 부활을 경험해야 모든 것이 풀리고 들리고 이 모든 것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6절 보면 마지막에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천사가 말이죠 그가 예수님 누우셨던 것을 보라
제가 남편의 죽음을 겪고 나니까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말씀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에스겔 18장 28절 그날 큐티가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대로 회개하고 예수님 영접하고 갔기 때문에 반드시 살았다 그러잖아요 그죠 그대로 일어났는데요
제가 글쎄 이 30대 여자가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남편의 장례를 집에서 치렀잖아요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모든 근조등 걸어 놓고 시신이 3일 동안 안방에 있었다고요 근데 장지에 묻고 와서 남편이 시신으로 누웠던 곳을 보라 그러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띵크해 보세요 근데 죽음이 이 땅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이고 원수라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았다고 하는데 창조주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이게 왜 무서워합니까?
저는 그때 아직도 새댁 같은 30대 과부예요 우리 남편이 나만 걱정하고 갔던 사람이에요 너무 연약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시신이 있던 자리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근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무서운 것과 슬픈 거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어요 슬프지만 우리 남편이 예수 믿고 갔잖아요? 회개하고 무섭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전한 방식으로 저는 남편을 보낸 후에 사람들이 다 가고 첫날 안방에서 시신이 누워 있던 그 자리에서 제가 혼자 잔 거예요 저는 이미 집에서 시신과 같이 이틀을 저는 안방에서 있었어요 이것이 죽음을 정복하신 부활의 은혜인 거예요 그리고 아들도 딸도 각자의 방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잤어요 우린 큰일 났다 이런 얘기 한마디도 안 했어 그날 말씀으로 제가 살아났기 때문에 여러분 바로 내가 말씀 믿고 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해결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양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사건마다 어떻게 해석하고 가는지를 다 보는 거예요 실수할 수 있잖아요? 그죠 질병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니까 남편이 하루 만에 천국 간 것도 기가 막히지만은 안방에서 있다가 간 것도 제가 경험한 결과 이게 하나도 무서운 사건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이런 구절에서도 말씀과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제 남편을 안방에서 빈소를 차리게 하시고 가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신이 있던 자리에서 전이나 후나 똑같이 30년을 살고 사역하게 하셨어요 할렐루야 그가 살아나셨다 그까 제가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 거예요 이게 부활의 은혜인 거예요 이 특별한 경험을 한 거잖아요 죽음을 통과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이제 어떤 무서운 일도 해석을 또 힘들지만은 두렵지만은 또 이제 해석해 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거죠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란 얼마나 우리 인생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인지 몰라요 주님은 누우실 필요가 없음에도 우리를 위해 누우셨어요 어두운 무덤에 누우셨던 것을 보라고 하신 것처럼 저도 남편의 구원을 위해 내 의지를 다 꺾고 누워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에요 구원을 위해 누워야 될 일이 있고 보라고 하기 위해 6시부터 9시까지 암흑 속에 누워 있어야 휘장이 찢어지는 간증을 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보라고 한 첫 사람이 여인들 막달라 마리아, 이 사람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어요 장례식에서 슬퍼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요 하지만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갔으면 슬퍼서 울고 난리 칠 일이 아니에요 복음 전하셔야 되는 거예요
적용 질문이에요 우리의 사건에서 죽은 예수를 찾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를 찾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못 만나면 날마다 시체 찾아 삼만리 하는 것이여요 교회를 다니고 큐티를 해도 아직도 죽음이 너무 두렵습니까? 이 간증을 들을 때 무시가 되세요? 부러우세요? 양육에 참여하셔서 실제적인 부활을 경험해 보시면 어떨까요?
모든 말씀은 실제적인 거예요 구속사는 실제적인 것이어요 자 그가 살아나셨다의 주님은 이제 그 증인으로 안식 후 첫날 낮고 낮은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셨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 부활의 증인도 지금 양육이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왜죠?
세 번째는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에요
7절입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나를 무서워하지 않게 양육하시는 이유는 나 잘 먹고 잘 살라고요 그럴 리가요 이 땅이 가장 무서워하는 죽음을 정복했다고 이거를 전하라고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라도 사명을 주십니다
이 주님은 이 여인에게 엄청난 명령을 주시잖아요 수제자 베드로에게 전하라고 하잖아요 세 번이나 부인했던 수제자 베드로 회복하기 위해서 이 여인을 쓰십니다
제가 집사였는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 목회자 세미나 하러 다니는 거잖아요 너무 맞지 않습니까?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이니 먼저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기 때문에 이제 말씀 보고 큐티하며 적용하면 그 말씀대로 되었네
제자들에게 갈릴리는 처음으로 주님을 만났던 장소예요 그 실패해서 주님을 버리고 도망간 장소이기도 해요 솔로몬 시대에 건축비로 주었지만 두로 왕 히람도 가지기 싫어했던 가불 땅이 갈릴리에요
근데 주님은 제자들을 이제 그들의 고향 갈릴리에서 만나 주십니다
요한복음 보면은 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베드로가 "아 난 이제 물고기 잡으러 갈게" 그러니까 모든 제자들이 "나도 나도" 그래 가지고 3년 동안 그 그렇게 공들여 양육을 했는데 모두 물고기 잡으러 돌아갔어요
근데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들이 너무 쪽팔리니까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게 그러니까 정말 우린 끝없이 참고 기다려야 돼요 예수님이 그곳에 가 주심으로 가불 땅 갈릴리는 시쳇말로 완전히 주 안에서 강남 땅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가기도 싫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곳이 갈릴리에요 갈릴리 당이라고 멸시 천대까지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베드로는 갈릴리가 너무 싫어 나 부활의 증인이라면 어떤 자리에서 은혜 주셨는가를 기억하면서 또 하기 싫은 사람 만나기도 싫은 사람이 있다면 첫사랑을 회복해야 돼 아직도 그렇게 싫은 게 많고 그렇게 좋은 게 많고 이러면 아직 주님을 시체로 보고 있는 사람이에요
시체 찾아 삼만리. 하나님께서는 나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네가 싫어하니까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내 삶의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기만 하면 그곳이 가장 인류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져도 예수님이 없으면 감사가 없어요 그러면 그곳은 천한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 초원님이 그랬잖아요 불교 평생 믿으시는 친정 어머니에게 "올해 저 권사 됐어요 제가 설교하니까 한 번 오세요" 그랬더니 그 엄마가 "권사가 뭐냐" 그러셔서 말하자면 "삼성에서 임원 되는 것이에요"라고 하셨대요 그랬더니 몸이 그렇게 아프신데도 삼성에서 임원 됐다 그러니까 수요일에 오셨어요
맞습니다 사명의 자리는 가장 일류의 자리에요 그렇다고 일류가 삼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니까 8절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마태복음에 보면요 우와 그 양육 받고 사도들에게 큰 기쁨으로 소리 쳤다고 나와 있거든요 근데 마가는 아주 가장 사복음서에서 처음으로 쓰여진 것이 이게 날것이에요
그러니까 마가는 여인들의 기쁨의 감정을 쓰지 않았어요 "도망하여 무서워하여" 불신앙적으로 묘사를 했는데 저는 이게 너무 이해가 돼요 잘 들어 보세요 죽음과 구원의 사건 모두가 놀라운 일이잖아요 그죠? 근데 하루 만에 남편이 뭐 1년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 만에 구원이 되었는데 제가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죽음도 너무 놀랍고 구원도 너무 놀라우니까 이때 기뻐할 겨를이 없는 거라이 말도 맞는데 이제 나중에는 결과론적으로 쓴 거죠 다른 기자들이
그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너무 사랑하지만 지금 양육이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조건 반사적으로 무서워할 수 있어요 저는 이제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빨리 돌아온 거죠 그래서 부활의 현장에서 온 인류를 양육시키려면 이런 막달라 마리아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목장에서도 사건이 무서워서 몹시 놀라 떨며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 성도를 양육할 때 목장 모든 식구들이 부활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목장마다 베다니 마리아만 있다면 그게 좋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막달라를 택했을 때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9절에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그래 저는 제가 예수님이라면 이 부활체의 몸을 누구한테 가장 먼저 보이고 싶은가 생각해 봤어요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잘 외쳐 줄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겠어요? 마음씨 좋은 사람이겠어요? 육이 무너져야 영이 들어가지 않아 그니까 가장 비천한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에게 그 부활을 보여 주는 거예요 그니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시면 이제 안 되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에 제자들과 남자들도 안 가는 무덤에 갔잖아요 그죠? 저에게도 이 막달라 마리아의 사모함이 있어서 혼자서 맞는 새벽이 좀 무섭지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예수님이 자신의 모습을 보이셨지만 막달라의 사모함도 같이 역사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 천사가 말씀을 기억하라고 양육해 주시고 말씀을 기억하고 나서야 이제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났다고 했는데
저도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무서웠지만 그날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니까 살아났어 그니까 이 말도 저 말도 다 사실인 거예요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맨날 이거 틀렸다 저거 틀렸다 이러면서 세월을 낭비하지 마세요
무덤을 향해 앉은 이도 막달라, 부활을 처음 보러 온 이도 막달라 그러므로 인류에게 가장 알려진 마리아는 베다니 마리아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예요 역할이 다르다고 봅니다 베다니 마리아는요 주님이 알아 주시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미리 다 칭찬해 주셨는데 그래서 저는 무서운 죽음을 갑자기 겪은 저로서는 막달라도 너무 공감이 되고 또 말씀을 죽자고 본 저로선 베다니 마리아도 너무 이해가 되고 좋아합니다 음 그러니까 여인들은 직분도 제자도 아니었지만 주님 자체를 사랑했잖아요 그 2천 년이 지나도록 막달라 마리아 알려지게 하셨지만 그 당시에는 부활을 믿지 않고 믿지 않고 또 완악하게 믿지 않던 제자들을 붙어만 있었더니 이 제자들을 쓰셨어요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부활의 증인을 소개하면서 게바, 12제자, 500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에게 보였다고 하면서 이 사복음서에서 모두 소개한 이 여인들을 바울은 소개하지 않더라고요
이게 너무 중요한 얘기인데 그 바울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근데 여성의 위치가 그만큼 열악할 때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자 중에서도 창기 그중에서도 귀신 들린 자를 택했다는 것이 주님이 부활하신 이유예요 전 제가 잘났다고 목회를 하는 게 아니에요 제 주제를 너무 잘 알아요 저는 개척 때부터 대놓고 우리들 교회가 귀신 들리고 눌리고 아픈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근데 22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다 와서 치유가 일어났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일곱 귀신, 돈 귀신 음란 귀신 술 귀신 담배 귀신 혈기 귀신 여자 귀신 남자 귀신 딱 일곱 귀신만 물러가기를 축원합니다 요 일곱 귀신만 여인들이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증인이 되었지만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쓰신 일꾼은 예수님과 같이 동고동락하던 믿음이 없던 제자들이었다는 거 다 택자라는 거 택자니까 양육의 순서가 좀 다르지만은 그러니까 부활의 경험은 또 누구도 자랑할 거리가 없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구속사로 성경을 읽어야 되는 거예요
적용 질문이에요 내 삶의 자리는 천합니까? 인류입니까? 사명의 자리를 사모하세요? 세상의 높은 자리를 목말라 하세요? 여러분은 누가 여러분의 부활 간증을 들어줬으면 좋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입니까? 지식 있고 돈 있고 권세 있는 자입니까?
갑자기 제가 설교하니까 너무 어렵죠?죄송해요 제가 오래 전에 집사님 간증을 한 번 해 드린 적이 있는데 이 목자님이 한 목원한테 너무 부활의 증인으로 너무 감동받아서 병상에서의 간증을 적어 보내 주셨어요 이분은 평범한 목원이에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이렇게 쓰셨는데 이분이 말기암이었었는데 의식을 잃었다가 그 입원해서 의식을 되찾고 이제 그때부터 일주일 동안 그냥 그 애통해왔던 구원의 대상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불러 마지막 유언으로 복음을 전한 거예요 믿음이 연약한 아들에게 "교회 나가라", 딸에게도 그때 공동체 붙어 있었는데 감사하지만 꼭 우리들 교회 청년 예배 목장에 나갈 것을 약속받았어요 시댁과 친정 식구들은 너무 세상적으로 탁월해 가지고 복음을 전하기가 너무 쉽지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는 동안 지방과 각지에서 화급히 달려온 큰 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 암으로 죽음을 앞둔 동생이 복음을 전하고 지방에 교회 이름까지 정해 주며 나가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했어요 눈 뜨기도 힘들 정도로 기운이 진하여 있다가 복음의 불모지인 친척 시댁 식구 한 사람 한 사람 올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우렁찬 목소리와 미소로 안타까움으로 이 시대 최고의 축복이 암이라고 하면서 그 권세로 복음을 전하는 그 모습이 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들 친구가 왔는데 이름이 세자인가 봐요 "세자야 세자야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야 이렇게 와줘서 고맙고 우리 아들하고 친구해 줘서 너무 감사해 그런데 내가 너한테 부탁이 하나 있는데 꼭 들어 줘야 해 들어줄 수 있지 약속할 수 있지" 그러니까 그 아이가 엉겁결에 "예" 그러는 "너 이번 주부터 우리들 청년 예배 목장에 꼭 나가 줄래 그래서 예수 믿어라 내 부탁 들어 줄 수 있지 자 손가락 걸고 약속해 도장 찍고 복사 그래 약속했다 꽝꽝" 그리고 위를 향하여 "하나님 보셨죠 아멘 세자아 너도 아멘 해" 그러니까 걔가 "아멘" 이러니까 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복사하고 꽝꽝 통과하고 하나님께 보고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동적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왜 빨리 오지 않냐 오늘 꼭 와야 한다고 시간이 없다 막 계속 재촉하며 몇 번씩 누구누구 출발했냐고 어디쯤 오고 있냐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 불러온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온통 응급실을 가득 채우고 순풍에 복음이 전해지며 뜨거운 성령의 열기가 가득한 거예요 찾아온 사람 중에 예수 믿지 않은 자는 손을 뻗어 재촉하며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기가 하는 말은 자기가 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이라며 반드시 예수 믿고 교회 나가겠다고 약속하되 서울에 있는 자들에게는 우리들 교회와 목장에, 청년 우리들 교회 청년부와 목장에, 지방에 있는 자들은 꼭 가까운 교회에 이번 주부터 나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때는 대구 광주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성령이 집사님께 임하여 전해지는 복음의 권세 앞에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있는 힘과 거부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이 있었어요
임종 예배를 드린 후에 목장 식구들을 바라보면서 "모두들 여기 있지 말고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자들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막 돌려보냈어요
근데 집사님은 목자인 저를 보더니 "토요일 말씀은 경계를 주셨고 어제는 도피성이었고 오늘 말씀은 뭐지요 아 슬로브핫의 딸들" 그 아픔 가운데 이분이 큐티를 하셨어요 그런데 이분이 이제 너무 평범한 목원이었으니까 "목자님 김양재 목사님께서 저를 기억하실까요? 제가 한 번만 목사님을 안아 보고 싶어요 저의 간절한 소원이에요 꿈을 꿨는데 목사님이 저에게 김은자 집사 참 예쁘다 너무너무 예뻐서 내 입에 넣어도 혀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 천사처럼 예뻐" 그래서 내가 "예쁠 곳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이 예쁘실까 했는데 제가 복음 전하는 것 때문에 예쁘다고 하신 게 깨달아졌어요" 이렇게 얘기했다는 거 암 투병하면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파킨슨씨 병을 갖고 있는 아들 친구 엄마와 아들 친구를 또 이제 그 전도하고 싶어서 또 그냥 오라고 연락을 했더니 그 사람도 아프지만 그동안에 말 안 듣다가 그냥 더 아픈 사람이 있으니까 이제 휠체어에 그 엄마가 아빠하고 아들하고 셋이 다 온 거예요 그리고 또 복음을 전해서 다 교회에 나가기를 약속했어요 그리고 남편이 우리들 교회 오지 않는 우리들 교회 여자 집사님들의 남편들 목장 식구들의 자녀 중 믿지 않는 아들들 교회만 나오고 목장에 들어가지 않는 자녀들 평소에 기도 제목을 올리고 구원을 위해 기도했던 모든 영혼 하나하나를 다 거론하고 불러들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자에게와 똑같은 방법으로요 또 저에게 그러더군요 "목자님 제가 전할 자에게 복음을 다 전했어요 모두 다 약속을 했는데 딱 한 사람이 거부했어요 아무개요 그리고 오지 않는 사람도 딱 한 사람 누가 있어요 이 좋은 축복을 주는데도 받지 못하니 어떡해요? 할 수 없지요 참 바보예요" 하였습니다 정말 그 사명 감당하는 집사님의 모습이 너무 안식과 평강이 넘쳐서 천사의 모습이 이랬겠구나
근데 너무 신기한 것은 복음 전하던 시간에는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셨대요 진통제를 투여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이제 그 다 전하고 다시 의식을 잃고 처치실로 옮겨졌어요 근데 또 한 번의 기적을 허락하셔서 이분이 목원인데 제가 수요 예배 끝나고 심방을 간 거예요 그래서 가서 제가 "집사님" 부르니까 눈을 번쩍 뜨고 제가 이제 기도해서 마지막에 "집사님 천국에서 만나요" 그때 이제 혀로 아멘을 하던 모습이 생생해요
근데 정말 놀라운 것은 목사님께서 오시자마자 "어 김은자 집사 어쩜 그렇게 예뻐요 정말 천사 같아요 이렇게 깨끗하고 마지막까지 사명 다하고 가는 은자 집사가 너무 부럽고 나도 은자 집사처럼 천국 가고 싶어요" 내가 그렇게 얘기한 거여요 그 무슨 목원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잖아요 은자 집사님 꿈속에서 하셨던 말씀 그대로 하셨잖아요
그 다녀가신 후 또 기적같이 한 시간쯤 정신이 돌아오셔서 그렇게 사모하시던 목사님이 다녀가셨다고 하니까 금세 "어 그때 내가 무슨 옷 입고 있었어요 나는 목사님 뵈올 때 이 병원 복 말고 예쁜 옷을 입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면서 너무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고 해요
그래서 남편 우리 유성열 집사님이 이거를 꼭 전해 달라고 하셨는데 마지막에 남편과 같이 임종을 하고 주님 품에 안기셨어요 부활의 증인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가 없는 거죠 목사도 권사도 아닌 한 평범한 목원 성도가 이렇게 마지막 병상에서 확신을 가지고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하나님을 부활의 증인 돼서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이 영혼 구원이라 그랬잖아요
저 또한 일개 집사 시절에 남편이 회개하고 천국 간 것 때문에 이렇게 간증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 인도한 것처럼 누구나 죽음 앞에서 이런 확실한 천국을 어떻게 보여 주겠어요 거짓말 못 해요 죽음 앞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밍웨이는 죽음 앞에서 권총 자살했어 천국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암이 걸린 수많은 환자 앞에서 지금 천국을 전할 교회라고 부르짖으라 해도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우리들 교회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죽음을 자주 경험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직분도 없는 평범한 성도들이 한결같이 천국에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니 너무도 감사하고 하나님은 살아 계심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그가 살아나셨다 주님은 증인으로 안식 후 첫날 낮고 낮은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셨어요 그에게 양육이 필요해요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면 안 되기 때문이에요 또 그 이유는 사명 주시기 위함이에요 죽음을 정복한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갑니다 모든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풍해지며 죄악을 벗어버리려고 주께로 갑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후 예수께로 나갑니다 예수께로 나갑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갑니다 슬프던 마음이 위로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갑니다 우리 목소리 높여 주님의 길을 벗어나서 주의 낸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갑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보고 주께로 갑니다 멸망의 포구 대하며 평화의 나라에 이르러서 영광의 주를 뵈오려고 주께로 갑니다
그가 살아나셨다의 주님은 증인으로 안식 후 첫날 낮고 낮은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셨다고 했어요 근데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데도 늘 "누가 이 돌을 굴려 주리요" 하면서 부활의 실체를 모르는 우리 불쌍히 여겨 달라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데 죽은 자의 하나님만 찾기 때문에 늘 그렇게 두렵고 떨리고 무섭습니다 우리가 택자 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양육을 받게 해 달라고 죽음을 정복한 간증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게 해 달라고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리는데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달라 부활의 주님이 주장해 주시는 우리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우리 예수님이 살아나셨어요 그랬는데 이제 보니까 제자들 다 도망가고 옆에 이제 마지막까지 있던 우편 강도 좌편 강도 밖에 없고 이 막달라 마리아도 이제 부활체를 잘 모르고 있어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혼자 십자가를 지셨는데 살아났는데 이걸 또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요 이게 누구 책임입니까? 주님은 마지막까지 이런 우리들을 위하여서 대신 죽어 주셨어요 하나님께 버림을 경험하면서까지 죄도 없는 주님이 이런 형편없는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 주셨어요 우리가 주님을 전한다고 하면서 그러면 죄 많은 나는 당연히 죽어야 되잖아요? 당연히 죽어야 되잖아요?
근데 제가 죽지 못해서 여러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돼요 날로 날로 그래서 저는 정말 그렇게 기도하고 싶어요 주님 저 용서해 주시고 우리 살려 주세요 저 좀 용서해 주시고 저 용서해 주시고 우리 모두 살려 주시옵소서 정말 제가 생명을 내놓았는데 생명을 내놓았다는 게 무엇인가 이렇게 하나님이 많이 우리 성도들 보내 주셨을 적에는 다 살아나서 부활의 증인이 돼야 되잖아요? 주님 여러분들 모두 얼마나 힘든 사건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겠어요 제가 살려 드리고 싶은데 제 회개가 닿지 않아서 여러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돼요 저 좀 용서해 주시고 주님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주님 저 좀 용서해 주시고 주여 제가 몰라서 그랬어요 몰라서 그랬어요 주님 제가 저를 용서해 주시고 주님 살려 주시면 우리 모든 여러분들의 가정이 살아날 것이고 교회가 살아날 것이고 나라가 살아날 것 같아요 나라가 살아날 것 같아요 주님 저 좀 용서해 주세요 주님이 나 위해 죽으셨는데 제가 입으로만 생명을 내놓았어요 주님 용서해 주세요 그래도 이 부활의 주님을 제가 경험해서 날로 날로 저의 이 죄악된 모습이 드러나니 이것이 사명으로 가는 것 같아요 오늘 이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할 수 없는 거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내가 입으로 시인하여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사오니 오늘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싶어요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출처: https://youtu.be/kaMFTbaI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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