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6/04/26] 김양재 목사 - 내가 사는 날(열왕기하 20:14-21)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님의 블로그 2026. 4. 26. 19:54

 

 


[성경 본문 전문] 열왕기하 20:14-21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곧 바빌론에서 왔나이다 하니라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빌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나이다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빌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나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설교 요약] 내가 사는 날

설교: 김양재 목사 (우리들교회) | 2026.04.26 주일 설교

 

여러분의 지난 10년을 한번 돌아보세요 많이 변하셨어요? 그대로이세요? 심리학자들이 2만 명 가까운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했대요 그랬더니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은 자신이 많이 변했지만은 앞으로 10년 동안도 변할 것 같냐고 물어보니까 이제 이제는 별로 안 변할 것 같다고 했대요 

그러니까 지금의 나를 거의 거의 완성형처럼 여긴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사실까요? 아니죠 착각입니다 이런 착각이 무서워요 지금 내 모습 내 삶이 마치 인생이 결론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믿음으로 하는 이 정답은 아니에요

 

오늘 히스기야도 그렇습니다 많은 업적도 남겼고 죽을 병도 넘겼어요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바로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합니까?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으면 다 괜찮다고 해요 성군의 착각이에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착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사는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히스기야 마지막 기록을 보면서 함께 think해 보겠습니다

 

내가 사는 날 첫째는 내가 사는 날만 붙들면 내 것만 보이려고 합니다

14절, 15절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빌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지난주에 봤어요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들었는데 병 낫고 이제 징표도 원하니까 징표도 주시고 예물도 받으니까 덤으로 주어진 히스기야 15년에 추가 시간의 첫 모습이 참 아쉽게도 보물 자랑이었어요

 

솔직히 세상에는 잘난 분들 많아요 근데 성공한 것을 자랑하려면 뭐 교회나 사회나 똑같은데 뭐 하러 교회에 오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그러면은 이제 계속해서 우리가 히스기야를 디스했잖아요 그러면은 히스기야는 왜 왕이 돼 가지고 이렇게 자랑을 하나 이걸 한번 띵크를 해 봐야 돼요 우리가 죄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은 항상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히스기야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이 구속사적인 거예요 자랑을 하는 데는 항상 그 속에 트라우마하고 열등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오늘은 이거를 좀 연구를 해서  히스기야를 너무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왜 성군이 됐을까를 생각하니까? 이렇게 연구를 해서 여러분들한테 이제 오늘 이제 레포트를 제출하는데 갑자기 막 성경 얘기를 하니까 여러분들이 너무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너무 죄송해요  어려우시면 집에 가서 계속 좀 들어 보세요

 

중근동의 강자인 앗수르는 이제 그 아버지가 섬긴 나라예요 그래서 아버지 아하스는 앗수르 제사 양식까지 다 가지고 와서 이제 성전 예루살렘 성전에 두었어요 근데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그 산당들을 다 제거하고 놋뱀을 부수고 막 열심히 개혁을 했어요 근데 이제 열왕기하 18장을 이렇게 보면 그렇게 히스기아가 4년 동안 열심히 개혁하는 걸 보면서도 형제 나라인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왕은 앗수르가 쳐들어왔는데도 에워 쌓이면서 3년의 유예 기간을 주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망했어요 

 

여러분 회개가 이렇게 어려워요 진짜 이거 회개하는 거는 해 그림자가 10도로 뒤로 물러나라는 거보다 더 어려워요 우리 형제 나라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유다의 왕인 아버지 아하스는 앗수르가 무섭잖아요? 앗수르에게 망했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은 친아수르 정책을 폈어요 그러니까 정치적으로는 아주 유능한 왕인 거예요 강자에게 붙었잖아요 이 사람은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이제 몰렉 우상을 섬겼잖아요 그러니까 그거 겉으로 보면 굉장히 잔인하지만은 폭군들이 자기 자식은 끔찍이 끼고 도는 걸 우리가 종종 보게 돼요 아하스도 좀 그러지 않았을까요

 

요즘 단종의 처절한 죽음을 다룬 왕과 사는 남자가 엄청난 이제 히트를 치고 있는데요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는 사실 권력을 위해 못 할 것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계유정난을 통해서 사람을 사육신 생육신 많이 죽였어요 그런데 조선 왕들 가운데 그렇게 아들 사랑이 극진했던 왕이 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세조의 두 아들이 다 약했어요 장자인 의경세자도 빨리 죽고 예종도 약해서 1년 만에 사망했지요

그럼 우리는 이제 해석할 때 야 이게 삶의 결론이구나 구속사로 그런데도 세조가 영원 무궁한 자기 손자의 왕권의 안정까지 그렇게 고민을 한 가족 우상주의가 있는 이 대표적인 거예요 세조가 그러니까 권력의 결론이 자식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하스가 권력을 위해서 아수르 몰렉 우상의 미신 때문에 자식을 불에 지나가게 했지요 왕이니까 자식은 또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권력을 해서 자식을 하나는 죽이고 또 그러면서 자식은 있어서 권력을 유지해야 돼 그니까 자식과 권력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도 자식을 달달 볶는 이유가 결국은 이제 우리 부모의 노후 보장 봉양 하라 하는데 거기다 권력까지 가지면 너무 좋겠다고 지금 열심히 공부시키잖아요? 그죠? 근데 그 자식 우상이라 달달 볶게 하는 거  불 가운데로 들어갔어 우상은 사랑이 아니죠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이제 예수를 믿게 되니까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보게 됐어요 그러니까 막 무섭게 하면서 죽이다가 자기한테 잘하다가 또 딴 사람은 막 죽이고 이러니까 이게 막 그냥 멘탈이 다 이렇게 저렇게 됐으니까 야 이건 아니다 그래서 아이 아버지가 이 앗수르에  너무나 이렇게 빌붙어서 이러니까 이 강자인 앗수르가 그 나쁜 거예요 그 앗수르라는 나라가 하나도 좋은 영향을 못 끼치고 있어요 그래서 그 강자인 앗수르 타도를 외쳤어요 이거 대단한 거죠 사실 어떻게 그런 아들이 나왔겠어요?

 

근데 그렇게 이제 개혁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무서운 앗수르에게 아람도 무너지고 형제 나라 북이스라엘도 무너진 거예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니까 시시각각 앗수르의 공격이 이제 유다를 향해 초읽기로 들어갔다고 생각되던 그의 병이 걸리고 병이 낫고 그다음에 이제 보물까지 그득하게 됐어요 해 그림자도 자기를 위해서 10도를 물러갔어요  그런데 그렇게 된 거밖에 없으니까 일상의 트라우마인 이 앗수르를 하나님도 내 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 이겨보겠다고 바빌론과 동맹을 맺어 보려고 보물 자랑을 하게 된 거예요

 

근데 여러분 앗수르나 바빌론이나 안 믿기는 마찬가지라고요 먼 지방 바빌론은 나와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역시 안 믿는 그들은 나중에 유다를 또 패망시키잖아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근데 히스기야는 이때 15년 추가 인생의 시작점에서 지금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 1순위가 아닌 거예요 그니까 우리가  아무리 그 예수를 믿어도 일본이라는 원수만 제할 수 있다면 우린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다 이런 거 있죠? 지금 이제 예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예를 들면 나를 너무 괴롭히는 저 안 믿는 영수를 죽이겠다고 또 다른 안 믿는 철수와 짝짝꿍이 돼 가지고 영수를 이겨 보겠다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는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거예요 사실 철수는 더 악하잖아요? 지금 그런데 철수 한 편 먹으려고 자기 집에 얼마나 부자인지를 그냥 침을 튀겨 가면서 철수에게 지금 자랑을 하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서로서로 자랑을 하면 끼리끼리 왕따를 시키는 것도 똑같아요 그러니까 힘센 친구에게 비굴하게 복종하는게 너무 쪽이 이제 팔리니까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동맹 맺어서 그 힘센 친구를 타도하려고 한 거죠 어려서부터 악하니까 지금 이제 우리나라도 뭐 일본도 다 왕따가 만연해 있고요  근데 이제 성군 히스기아가 이러니 우리는 말할 것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어요 18장 6, 7절에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러니까 유다가 앗수르를 배반해도 그것이 모세의 계명을 지킨 것이기 때문에 형통하다고 이렇게 여기가 나왔잖아요 ?

 

왜냐면 앗수르는 지금 사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성경을 은유로 읽어야 되는 게 또 있어요 그 왕들이 또 이거 알아들으면 안 되잖아요 근데 이제 왕들은 이런 걸 봐도 몰라요 우리만 알아요 그래서 요한계시록도 로마를 썼지만은 로마의 황제들이 못 알아들었어요 그걸  이걸 그래서 어떤 앗수르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안 돼요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이 망한 이후도 이어지는 12절에서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예 그러니까 지금  유다도 모세의 여호와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에 형통했고 이스라엘도 말씀을 여호와의 계명,  모세의 계명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패망했다고 분명히  여기 언급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망한 이유가 앗수르가 아니고 말씀을 안 들었기 때문에 망한 거다 이 얘기를 해요  너무 어려우면 목장 가서 반드시 여러분 설명 잘해 드릴 테니까 목장 가서 다시 들어요  이거 작년에 설교를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또 다 잊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망하고 흥하고 붙고 떨어지고가 그 사람 때문이 아니고 내가 말씀을 따르지 않았어 내가 큐티도 안 하고 말씀대로 적용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이렇게 밝히고 있어요

 

그래서 질문해 주고 양육해 주는 이사야가 너무나 필요한 거예요 그래도 히스기야가 잘한 거는 선지자 이사야와 교제한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이었어요 그니까 이제 이사야가 막 자랑질을 하니까 히스기야 이 사람들이 무슨 말했어? 어디서 왔어요? 무엇을 보고 갔습니까? 이건 안부 질문이 아니에요 우리가 우리 입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은혜의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자기 입으로 실상을 말하게 하려고 지금 묻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니까 질문을 함으로 think해 보게 하려는 거죠

 

이런 이사야 질문에 어떻게 대답합니까? 히스기야가 "그들은 먼 지방 바빌론에서 왔어요 예 그들은 내 궁에 있는 거 다 봤죠 내 창고에서 보이지 아니한 게 없어요" 히스기야는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아요 숨기지도 않아요 아주 자랑스러운 거 같아요 내 궁 내 창고를 강조하고 다 하나도 남김없이 보여 주었다고 힘주어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먼 데 있는 바빌론이 자기를 알아주니까 좋고 예물을 주니까 예물까지 주니까 기쁘고 자기 보물을 자랑을 받아 주니까 더 신이 난 거예요  그니까 바빌론이 앗수르를 혼낼 수 있을 것 같은 거죠 그니까 우리 목장에서 그니까 히스기야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도 몰라 지금 예 그러니까 하나도 지금 예 뭐 꺼리는 것도 없어요 막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목장에서 이 한 마디 이 질문으로 히스기야는 죄를 대번에 경고를 받아요 때로는 기분이 나쁘지만 이런 질문이 은혜예요 그래서 말씀과 공동체가 필요한데요 내가 사는 날만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 공동체란 말이죠  자꾸 딴 데 가려는 나를 말씀으로 기도로 인도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우리를 이렇게 다루실 때가 많아요 아담에게도 그러셨죠 선악과를 먹고 숨었는데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죠 몰라서 물은 게 아니고 네 입으로 네 상태를 말해 보라  우리가 내가 사는 날만 붙들면 결국 내 것만 보이려고 해요  그러니까 내가 사는 날에 태평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보신 내 눈물보다 내가 사는 날이 내 평안으로 가득 차면 내가 보이고 싶은 내 보물이 더 커 보이는 거예요  그게 이제 본능이라니까요

 

적용 질문이에요

누가 꼭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질문은 뭐예요? 지금 뭐가 애가 붙어요?  어디 승진했어요? 반대로 누가 물을까 봐 두려운 질문은 뭐예요? 그리고 내 자랑 속에 그 열등감 트라우마는 뭐예요? 왜 히스기야가 자꾸 자랑을 하나 생각을 해 보니까 이해가 되잖아요? 히스기야에 대해서 그래서 구속사는 인간론이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거예요 누구도 손가락질할 사람이 없어요 망하고 흥하고가 말씀 때문이라는 것이 100% 믿어지십니까? 이거는 100% 진리예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 때문에 안 됐어 너 때문에 안 됐어 뭐 이딴이야기... 말씀 때문에 안 되고 되고 하는 거예요

지금 부도 안 나서도 지금부터 빚을 갚기로 작정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 주는데 부도 안 났으니까 난 죽어야 돼 당신이 바람 폈으니까 난 이혼해야 돼 이러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분이 난 너무 바보 같지만 얼마 전 이전 지점에서 알고 지내던 후배들을 반갑게 만나 점심을 대접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자신의 현재 지점장 과거 지점장 험담만 하면서 즐거워하다 헤어진 일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후배들 앞에서 히스기야처럼 바보 같은 얘기만 하다 돌아오면서 참 마음 한편이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미련한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미련한 걸 아셨다는 게 이사야 같은 공동체 덕분이라는 거죠 그렇죠  우리는 자기밖에 모르거든요 내가 사는 날 첫째는 내가 사는 날만 붙들면 내 것만 내 것만 보이려고요 

 

두 번째는 그러나 내 것은 하나도 남지 못하는 거예요

16절입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그니까 이사야가 질문했고 히스기야의 대답을 들었어요 그러고는 그러니까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소서  본문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데 히스기야는 이미 바빌론 사자의 말을 들었어요 세상의 말을 먼저 듣고 세상에 알아주는 것에 너무 기뻐했어요 그런데 이제 이사야가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하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면 오죽 좋아요? 근데 세상 말이 훨씬 크게 빨리 잘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마음이 이미 세상 말로 가득 차 있어서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잘 안 들리고 들려도 아프게 들려요  근데 이 이사야의 질문과 히스기야의 대답으로 단번에 경고를 받지요

 

17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앞서 히스기야는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했어요 근데 주님은 그렇게 보여준 모든 것이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히스기야는 자랑으로 하나도를 말했어요

근데 하나님은 심판으로 하나도를 말씀하십니다 히스기야가 자랑하면 내뱉은 말이 그대로 심판의 목록이 되어서 돌아오는 거예요

 

여러분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자랑하면 그 자랑이 심판이 되는 거예요 히스기야는 내 궁 내 창고라고 했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목자가 이렇게 처방해 주는 거예요 당신께 뭐가 있어요? 히스기야는 자기 것처럼 자랑했지만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니었어요 조상들이 쌓아온 것이고요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근데 그걸 자기 것처럼 과시한 순간 수백 년의 유산이 함께 무너지는 거예요

믿음의 어머니가 기도해 주고 할머니가 눈물로 쌓아 주고 부모가 예배를 지키면 물려준 그 유산까지 다 흘려보내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50년 빈국으로 살다가 지금 예수가 들어와 가지고 갑자기 잘 살게 됐잖아요? 근데 요즘엔 또 예수가 없다고 얘기를 해요 그게 불과 한 100년. 저는 뭐 1, 2, 3대도 아니고 고조 증조부터 이제 사실 우리가 6대가 됐어요 그 제가 이렇게 하는 것도 제 힘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이제 다 이제 잡혀간다 끝이 아니에요 18절에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심판이 내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자손에게까지 가는 거예요 아들과 딸들이 바벨론 포로의 자리 자유와 미래가 꺾인 자리로 끌려간다는 거예요 이 말씀은 나중에 바벨론 포로 사건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왕족 출신 젊은이들이 바벨론 궁정으로 끌려가는 장면들이 나오잖아요 또 시드기야의 아들 다니엘과 세 친구 예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어요

 

여러분 기적적으로 바벨론에서 총리가 된 다니엘도 높은 자리에 오른 거 같아도 여전히 포로의 자리예요 자유와 미래가 꺾였어요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미국에 총리를 해도 우리 나라가 없으면 그거는 이제 무시를 받게 돼 있어요 나라 잃은  서러움은 당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내가 사는 날만 붙은 사람의 결말이에요

처음에 내가 주인공 갔다가 끝에는 다 빼앗기고 내 후손까지 끌려가는 거예요 우리도 자식, 집, 건강, 돈, 학력, 이력, 경력, 사역, 경건까지 다 내 것처럼 움켜쥐고 사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너무도 보이고 싶어 해요 보여야 이기는 거 같아요

 

하나님 말씀은 분명합니다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내 것이어서 남지 않는 게 아니죠 원래부터 내 것은 없어요 이 땅에 내 것은 없어요 그래서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 줄 믿습니다 사명 때문에 주님이 잠깐 맡기신 거예요 그러니까 내 거 내 거라고 너무 주장하지 맙시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주를 위해 구원을 위해 지혜롭게 사용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남는 게 있는 거예요 어떤 집사님은 처음 목장으로 와서 목자님 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나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하는 거야" 그리고 챗GPT에 물어봤대요  그러니까 세상은 이유가 없는데 왜 밥을 대접하나 음모가 있는 거 아니야? 막 이러면서 너무 이기적인 이 땅의 사람들은 그냥 기브앤테이크니까 이제 그걸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GPT가 "지극히 작은 자와 지극히 큰 자" 뭐 이렇게 나왔대요 우리집이 기초수급자인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지극히 작은 자 굉장히 그래서 이분은  야 부활은 증명하는 게 아니고 경험해야 된다는 거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고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적용 질문이에요

자랑해서 심판당한 경우가 있나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얼마나 기쁘게 고백합니까?  나는 자녀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있습니까?

 

내가 사는 날 첫째는 내가 사는 날만 붙들면 내 것만 내 것만 자랑 내 것만 보이려고 해요 그런데 내 것은 하나도 남지 못한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살아?

 

세 번째는 그러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여야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여야 하는 거예요 19절에요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려 하니라" 그러니까 이사야가 아주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선포했어요 지금 했잖아요? 근데 히스기야의 반응이 뭐예요? 와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 여기까지 들으면 참 경건한 것 같아요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100% 맞아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 들리잖아요?

 

여기서 안 끝나요 뒷말이 붙어요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나님이 하나님 말씀이 왜 선하다고 해요 내가 사는 날에 내 생전 내 인생만 평안하면 예 어찌 선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들리잖아요?  이 부분의 해석을 뭐 여러 가지로 하긴 하더라고요 그니까 문자적으로 보면 자손이 포로로 끌려간다는데 후대가 굴욕을 당한다는데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괜찮으면 좋다는 거예요 지금 예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겉으로는 말씀을 선하다고 받는 거 같지만 속으로는 자기 시대의 평안에 안도하는 거예요 경건한 말을 하는 거 같지만 마음엔 이기적인 안도가 이제 숨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 내년에 망한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하나도 그거 안 들어요  그러니까 에스겔의 8장에 에스겔 저기 예루살렘 성전이 그냥 다 우상으로 뒤덮혀서 장로 70명을 데리고 가 가지고 이거를 보라고 근데 아무도 망할 거다 얘기도 안 들어요 근데 20장에 1년 만에 망했잖아요? 그니까 70명 중에 두어 명이 와서 어떡하냐고 어떡하냐고 그러니까 에스겔이 너희가 나에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결단코 내가 정말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게 망한다 그럴 때 빨리빨리 큐티를 하고 이타적으로 살아야 되는데  됐어 됐어 이러니까 갑자기 부도가 났는데 그때부터 말씀이 깨달아집니까? 저처럼 남편이 갑자기 갔는데 그때부터 말씀 보면 깨달아져요 안 깨달아져 나의 삶을 되게 어 너희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용납지 아니하리라 물어도 하나도 모르는 거야 여러분들 시간 있을 때 큐티하고 시간 있을 때 목장 가야 되는 거예요

갑자기 사고가 나면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그거 심판으로 왔는데  그래서 지금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지금 자기 시대만 평안하면 된다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그런데 이제 더 놀라운 게 있어요 3절에서 히스기야가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걸 기억해 달라고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호소한 그 이력서가 진실과 전심이잖아요? 근데 여기는 태평과 진실도 진실은 똑같은 말이고 태평도 그 전심하고 뿌리가 같아요 샬롬 그런 무엇을 뜻해요? 하나님 앞에 드렸던 기도의 언어가 이제 자기 시대의 평안만 구하는 자기 위로의 언어가 된 거예요 하나님 앞에 엎드린 말이 자기 생전만 챙기는 말로 바뀌었어요

 

게다가 히스기야는 자기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 통곡했잖아요 근데 자손이 당할 심판 앞에서는 울지 않아요 오히려 괜찮다고 하는 거 내 생 내 인생만 아무 일 안 당하면 좋다는 거예요

이게 내가 사는 날만 붙드는 사람의 실상이에요 자기 눈물은 있지만 남에 대한 눈물은 없어요 심지어 자기 후손에게도 말이죠 자기 평안은 절실하지만 다음 세대의 고통은 먼 바벨론이고 먼 이야기인 거예요 우리는 내 건강 내 집과 내 성공엔 그렇게 민감해요 그런데 자녀의 영혼을 위해서 얼마나 웁니까? 다음 세대의 믿음을 위해서 얼마나 걱정합니까? 이나라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세요? 히스기야를 통해 내 자신의 모습을 보니까 너무 슬퍼요

 

이 대목은 열왕기서를 관통하는 질문 유다가 바빌론에게 왜 멸망당했냐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답이에요

히스기야의 실책이 그 이유인 거예요 그렇다고 히스기야를 역적이라 그러지 않아요  그러니까 유다의 이제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하는 장본인인데 이거 잘 들으셔야 돼요 

어쩌면 그 한 번의 실수에 대한 징벌 치고는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북왕국의 멸망도 하나님보다 늘 그렇게 앗수르 애굽 의지하는 거예요 북왕국도 그러니까 하나님을 늘 뒷전 삼았기 때문에 지금 북왕국이 북 이스라엘이 멸망했잖아요

 

그걸 기억하면 지금 히스기야에 대한 이것도 굉장히 공정한 거예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예언을 들은 히스기야는  이게 선하다고 지금 반응하잖아요?  성경이 히스기야의 마지막을 또 이렇게 기록합니다 20절에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히스기야는요 종교 개혁만 한 게 아니에요 많은 업적도 남겼어요 저수지와 수도를 만드는 엄청난 공사를 했어요 예루살렘의 물 부족 문제도 해결하고 아수르 침공에 대비해서 성의 방어력을 크게 높인 거예요 대단한 왕 맞습니다

 

역대하 32장을 보면 백성은 히스기야를 왕의 묘실 높은 곳에 장사하여 경의를 표했다고 해요 하지만 성경은 이걸 한 줄로 지나가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모든 업적에 대한 평가는 단 한 문장 18 글자로 끝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대단한 업적도 큰 경의도 히스기야를 내가 사는 날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어요 그런데 말씀은 자기 마음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어요

바깥은 지켰는데 안은 못 지켰어요 성은 업그레이드했는데 자기 영적 성전은 업그레이드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진짜 결론은 뭐겠어요 21절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스기야의 인생 마지막 기록은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예요

므낫세가 누구입니까 유다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 가운데 하나요 그래서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을 모두 뒤집어 엎었어요  므낫세가 이제 또 다음에 나오겠지만 그 결과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 최악의 왕 므낫세의 등극으로 닫히는 거예요

이게 대체 무슨 아이러니입니까? 히스기야는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 마침표가 므낫세란 말이에요

 

여러분 히스기야 곁에는 최고의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어요 말씀을 들었어요 양육을 받았어요 하지만 히스기야는 끝내 자기 힘으로 내가 사는 날을 꺾지 못했어요

이건 양육의 한계가 아니에요 인간의 한계예요 이렇게 히스기야도 자기 힘으로는 안 되었는데 누가 이 땅에서 자기 힘으로  자기 힘으로  믿음을 유지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까 어떤 목사 그러더라고요 근데 히스기야를 그렇게 나쁘게 얘기하셔야 되겠습니까? 막 이렇게 좀 자랑하고 싶은데 그냥 히스기야를 그냥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 누군지 딱 감이 옵니까?  글쎄 말이에요

 

여러분들 이렇게 히스기야가 이런지 몰랐죠? 그런데 구속사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는 거예요 그럼 이런 연약한 히스기야를 왜 다윗 버금가는 성군으로 인정해 주셨을까요?  이거를 또 우리가 think를 해야죠 이제 물론 언약 때문이에요 택자이기 때문이에요 근데 우리가 쫙 이제 훑어보니까 병이 낫고 징표 주고 예물을 주니까 아무리 양육해도 말씀이 안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히스기야에게는 그게 한계적인 고난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병이 낫다 그래서 믿음 유지하는 거가 참 쉽지가 않아요 그건 지나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앗수르잖아요? 그 앗수르가 침략해 오는 거 너무 두려운데 그걸 임하게 한 거예요 하나님이 그래서 환난을 허락하시네요 인생은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영이 세워지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니까 이것이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인 거예요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에요

 

그가 앗수르 바빌론의 사자에게 보물을 자랑했는데 내가 사는 날만 붙들고 있으니까 병이 나은 후에 18장에 보면은 그 두려워하던 앗수르가 쳐들어온 거예요 쳐들어온 거야 18장에 보면 그니까 14년이나 기억하고 죽을 병에서 나았던 이때에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즉시 기도 안 해요 기도를 안 하고요 앗수르 타도를 외치던 그가 앗수르 왕에게 내가 범죄했다고 빌어요 "내가 범죄했나이다 잘못했어요 내가 얼마 들이면 되겠어요" 이런다 아휴 그러니까 은 300 금 30 이렇게 내라고 했는데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러면서 내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더 나가서 성전 왕궁 곳간에 은을 다 주었고 자기가 성전 개혁할 때 모든 기둥에 입힌 성전 문의 금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정말 하나도 안 남기고 모두 산헤립에게 바쳤다

 

18장 읽어 보세요  물론 100년이 넘은 후에 바빌론에 이거 다 뺏기죠 뺏기기 전에 이미 예행 연습을 시켰어요? 앗수르가 다 가져갔잖아요 그러니까 근데 이게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열왕기하 18장 16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앗수르에게 조공으로 모조리 바친 금들 있잖아요 우리가 지난 주일에 13절에 병 걸렸을 때 있었잖아요 그때 금은보화 그 존재했잖아요? 그때가 히스기야 14년이라 그랬죠?  그러니까 병 걸린 다음에 앗수르가 쳐들어왔다고  그 병 나은 후에 보물을 보였던 보물을 다 뺏긴 거예요

 

그런데 뇌물은 다 받아먹고 앗수르는 다시 2차 침공을 하면서 18만 5천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어요

드디어 히스기아가 이때야 회개를 진짜 하는 거예요 그 19장 3절에 "지금은 환난과 징벌과 책벌의 날"이라고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징계라고 자기를 책망하는 벌이라고 이 구체적으로 회개를 했잖아요

병 걸렸을 때는요 통곡하기만 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돈도 하나도 없잖아요 금은 다 뺏겼잖아요 아무것도 없는데 18만 5천 명이 쳐들어왔어 그러니까 살게 지금 하나님이름밖에 부를 이름이 없어 "하나님 내가 잘못했어 나를 책망하시고"  그러니까 이 산헤립에 편지를 놓고 성전에 들어가서 막 기도했죠 그 이때가 진정한 기도를 병들었을 때보다 훨씬 진정한 회개의 기도를 한 거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또 하나님 맨날 물러가시는 하나님은 또 네 기도를 들었다 하시고 응답하셨어요

 

그래 가지고 앗수르 18만 5천 명이 그냥 하루아침에 송장이 된 거예요 하나님은 히스기아가 부족해도 언약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렇게 지켜 가셨어요 예 맞습니다 히스기야처럼 되었다 함이  없는 인생임에도 우리는 그냥 저절로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려고 해요 그러니 은혜에 붙들며 붙들려 살면서도 늘 힘들고 늘 두렵고 걱정을 해요 내게 사는 것이 나이기 때문에 구원의 길을 온전히 가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히스기야 바울이 똑같이 내게 사는 날, 내게 사는 거, 사는 거 얘기하잖아 근데 히스기야는 내가 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죽음은 통곡이었고 자손의 포로는 방관을 했고 끝에는 므낫세를 남겼어요

반면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이었어요 사는 것도 그리스도고 죽는 것도 그리스도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주님이 우리 인생을 바꿔 주신 은혜예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삶은 내가 만들어내는 삶이 아니고요 내가 사는 날을 주님께 맡기고 날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거예요 그것은 주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의 자리를 잘 지키는 거예요  그래서 큐티하고 목장 가는 거예요 예배 중심으로 사는 거예요 이게 쉬운 거 같으면서 제일 어려워요 말씀을 따르지 않고 앗수르 따라다니고 바벨론 따라다니고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붙들지 않았어요 붙들긴 커녕 우리 다 내어 주셨어요 자기 평안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험한 십자가를 지셨어요

 

우리도 히스기야처럼 실수할 수 있어요 아니 훨씬 더 실수해요 근데 히스기야도 넘지 못한 우리 안에 한계를 그리스도께서 넘어 주신 거예요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사시면서 우리도 그 한계를 날마다 넘어가게 하십니다 이런 차원에서 열왕기하 18장 19장의 그 2차 침공에서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은 그가 오늘 20장에서 이사야로부터 양육 받은 게 있잖아요? 예언받은 게 있고 들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2차 침공이 왔을 때 딱 말씀이 생각나는 거야

아 내가 내가 이 자랑하던 이런 일이 왔구나 진정으로 뉘우치고 돌아섰음을 알려줍니다 그렇게 해서 히스기야가 다시 하나님만을 1순위로 두고 바른 방향으로 그의 연장된 인생 15년을 걸어가게 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19절을 다시 읽어 볼게요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오 하니라 이사야의 경고 말씀을 처음에 들을 때는 내가 사는 날만 태평해서 선하다고 했겠지만 이제 1차 2차 침공에 환난이 지나고 다시 해석되면 나 같은 죄인을 살려 주시니 너무나 하나님이 선해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살려 주시니 선하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빌론 왕궁에 환관이 되리라는 말씀도 내가 살아보니까 훈련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걸 알아서 내 자녀도 훈련받아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100% 맞으시기 때문에 선하다고 고백한 것이 되는 거죠

 

결국 므낫세도 사로잡혀 갔다가 회개하게 되잖아요 히스기야의 그 고백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회개를 했기 때문에 성군으로 자리매김할 줄 믿습니다 그니까 처음의 고백과 마지막의 고백이 다 맞는 거예요 

학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석을 했는데 역대기에는 앗수르의 1차 침공 때에 뇌물을 퍼준 히스기야의 실책을 딱 감춰 줍니다 없어요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일부러 히스기야의 실책을 그가 마치 변질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성경 후반에 20장에 배치를 해서 어쩌면 히스기야가 억울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회심한 히스기야를 통해 진짜 이 땅에는 진정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이거를 소망하게 한 최고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영광을 엄청 돌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몰라요  그니까 히스기야보다 훨씬 더 연약한 우리도 택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실 줄 믿어요

 

그니까 이제 고백이 달라져야 돼요 아유 내가 사는 날 동안 행복하면 되지 뭐 평안하면 되지 이게 아니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어떤 말씀이라도 순종하게 도와주세요가 돼야 돼 내가 사는 날을 내가 붙들지 말고 그리스도께 맡겨야 돼요 내 평안만 구하지 마시고 자녀와 후대의 구원을 구해야 돼요 내 인생만 챙기지 말고 공동체를 품어야 돼요 내 것을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돼 이 길만이 우리가 내가 사는 날을 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날로 바꾸어 줍니다 열왕기는 히스기야 실수를 많이 언급했지만 역대기는 그냥 개혁한 것만 3장에 걸쳐서 이렇게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데요 이거는 우리는 택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실수를 해도 천국 시민이라서 천국에 다 올라갈 수 있는 그 천국에서는 나의 모든 실수를 다 덮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때문에 그래서 관점이 다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히스기야는 엄청난 개혁을 했지만 마지막에 바빌론 사자에게 내 창고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포로로 가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잖아요

그럼 우리가 생각하기에 히스기야는 아주 역적 아니에요? 매국노 아니에요? 나라를 없이 갔는데 그런데 그 행위 하나로 히스기야 보고 역적이라 그러지 않아요 우리의 행위는 51대 49  51대 48로 끊임없이 거룩해져 가는 과정인데 이 히스기야는 너무나 유다 나라에 예수를 제대로 보여 주는 개혁을 했기 때문에 근데 그게 마지막에 그 회개였기 때문에 다윗 버금가는 성군으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거죠

 

그런데 세상은 이 말을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행위로 평가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믿음과 행위는 이제 다른 거예요 그니까 우리나라에 예수가 들어와서 예 그 예수가 들어온 건 최고의 개혁이고 그리고 저는 그 개혁 때문에 공부를 했고 목사까지 됐잖아요 저희가 이렇게 된 거는 이건 있을 수가 없는 개혁인 거예요 5천 년 역사에  그런데 믿는 우리가 이걸 제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우리도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임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곳이 지금 망하기 100년 전이잖아요 히스기야 때문에 100년을 유예를 해 주셨어요  근데 결국은 또 안 들어와서 망하는 거 그니까 히스기야의 어마어마한 회개가 성군이 되게 하신 거죠

 

적용 질문이에요

이것만 아니면 괜찮아 하는 것은 무엇이에요? 자녀의 구원이 성적이나 성공보다 정말 더 중요합니까? 요즘 내가 사는 날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에요 나예요 돈이에요 자녀예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이번 주 결단하고 적용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히스기야 말씀을 들으면서 참 회개가 많이 되었습니다 의사가 20살을 넘지 못한다는 사망 선고를 듣고 기도원으로 다니다가 기도원 누나로부터 어려서 성추행 당해서 제가 이제 그것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제 생명을 살려 주시면은 이제 사명의 길을 가겠다고 서원해서 목회자가 되어서 13년 목회를 하다가 음란으로 한번의 음란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살려고 우리 가족이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이분이 15년 되신 목사님이에요

근데 생명을 연장받은 히스기아가 자기의 모든 것을 자랑했는데 저도 이제 학교에서 뭐 여러 가지 이제 그 일을 하게 되면서 막 인기가 있어서 이제 180명을 막 담당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빠지고 내 프로그램이 좋아서 교만했어요

저는 겸직하면 안 되는데 막 장애인 활동 보조 일도 하고 학교도 근무하고 장애인도 돌보고 뭐 이러고 저러고 해서 많은 일을 했는데 이제 15년을 하다가 작년 겨울에 디스크 파열이 왔고 교수는 신경이 다 죽었다고 사형아닌 사형선고를 받고 퇴원하고 산재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제가 이제 겸직을 한 것이 드러났는데 대학원 후배가 이사야 선지자가 되어서 목사님의 부정과 죄를 말하는데 저는 또 변명만 늘어놓았어요 그래서 결국은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았는데 지난주 설교부터 목사님의 말씀이 저에게 우뢰와 같이 경고의 말씀으로 들려왔어요

제가 산재 처리를 끝까지 갔다면 저는 고발당해 실형이나 그동안 15년 받은 급여를 다 토해내야 할 판에 하나님이 또 이제 살려 주신 거예요  그래서 15년 만에 목사님이 아주 장문의 글로 "제가 히스기야입니다" 이렇게 이제 편지를 보내 주셨어요

제가 이제 정말 살려 주시면 열심히 사명 감당하겠습니다 히스기야처럼 내가 하며 앞으로 전개될 바빌론의 침공을 예견하지 못한 모습에서 오늘 저의 불법을 다시 회개하였는데 저를 생명 연장하며 호흡으로 살아가시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앞으로는 정직해 공동체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상처가 나았었는데도 징표만 구하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말씀 맺을게요 내가 사는 날 내가 사는 날만 붙들면 내 것만 보이려 합니다 그러나 내 것은 하나도 남지 못해요 내 것은 이 땅에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거  그거밖에 없다고 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찬양)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을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을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내가 사는 날만 붙잡지 않게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내가 자랑하는 내 속에 왜 내가 그렇게 자랑을 하는지 그 속에 열등감과 트라우마를 좀 직면하게 해 달라고 다른 사람들의 열등감, 트라우마도 내가 먼저 알아서 이해하게 해 달라고 망하고 흥하고가 말씀 때문이라는 것이 100% 믿어지게 해 달라고 너 때문이 아닌 거예요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아이 때문에가 아니고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망하고 흥하고가 되는 거라는 거를 믿어지게 해 달라고 내가 자랑하는 것이 다 심판이 된다는 것을 이걸 알게 해 달라고 이제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해 달라고 그리고 이제 정말 이 나라,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리잖아요 이 나라를 지켜 주시고 전 세계를 지켜 주시고 이 전쟁에서 해석하는 지도자가 나오게 해 달라고 전 세계 지도자 다 우리가 히스기야 같은 지도자가 나오게 해 달라고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하나님 오늘도 말씀을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전히 내가 사는 날만 붙들고 살았던 저희의 영혼을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 주님께서 나의 삶을 은혜로 덮어 주실 그때 이제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 말씀하시며 내가 사는 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으로 하나님 오늘도 기도하며 내 죄를 보며 회개하며 하나님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열방과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며 중보하며 나아가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살려 주시고 공동체를 살려 주시고 나라와 민족을 살려 주시고 저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며 살아가는 삶이 되시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히스기야의 인생을 묵상해 보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이 멘탈의 붕괴가 올 정도로 아버지를 보면서 힘들었고 기도하고 개혁을 했는데 죽을 병이 걸리고 북 이스라엘이 망하고 정말 그 가운데 자기가 해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자기의 조울함을 또 이기지 못하고 바빌론에게 자랑을 하고 아수르가 쳐들어오고 정말 너무나도 비굴하게 빌어서 갔는데 18만 5천 명이 또 쳐들어왔어요 히스기야의 인생의 최대의 축복은 산헤립이 쳐들어온 거예요 18만 5천 명이 쳐들어온 거예요 그동안의 모든 양육이 빛을 발해서 환난과 징벌과 책벌의 날이라고 자기 죄를 알고 이제 정말로 회개를 했기에 하나님이 18만 5천 명을 하루아침에 물리쳐 주셨는데 주님 우리가 이렇게 형편없는 인생이지만 말씀을 보고 이사야와 교제하고 늘 질문을 받고 한 것들이 최고의 양육이 되어서 히스기야가 다윗 버금가는 성군의 자리에 간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오늘 이것이 믿어집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이 평소에 드린 말씀이 나에게 사건이 올 때 참으로 환난과 징벌과 책벌의 날이라고 그 회개를 이 말씀으로 회개할 때 최고의 성군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게 하는 아버지 하나님 그런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 가장 영광으로 나는 지워지고 썩어지고 나는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내 속에 그리스도만 보일 수 있는 이런 히스기야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 이렇게 구속사가 내 죄를 보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그 사람의 인생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고 갈 때 지금 우리나라도 전 세계도 전쟁이 발발을 하고 서로서로 탓하며 싸우지 않게 도와주시옵시고 주님 이때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히스기야처럼 회개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히스기야 회개로 100년의 심판이 유예가 됐는데 주님 우리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 우리 나라를 살려 주시옵소서 저부터 회개합니다 주여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여 저부터 용서해 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나라 살려 주시옵소서 전 세계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저부터 용서해 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회개합니다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 나라 살려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주님밖에 부를 이름이 없습니다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회개할 때 우리 나라를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한 사람의 회개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아내와 남편의 자리를 지키고 아버지 하나님 역할을 감당할 때 아버지 그것이 회개의 역사로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저 용서해 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이 나라 피로 값 주고 사신 나라인 줄 믿습니다 살려 주시옵소서.

내가 사는 날에 말씀을 듣고 신앙 고백으로 드린 이 헌금을 받아 주시옵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기로 결단하여서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우리들의 회사와 사업과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물질과 건강과 관계와 목장에 기름을 철철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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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lc_ZCSzu5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