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마가복음 9:2-10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설교 요약] 세상의 영광을 넘어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지난 주일에 목사님은 나오신 목사님은 취학부를 오랫동안 하셔서 초통령으로 소개하시더라고요. 저도 사랑부를 오래 했는데 저는 사통령으로 소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올해는 판교평원과 주차부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여러분 주차질서요 정말 정말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주차는 예배입니다. 아멘
오늘 사랑부 헌신 예배를 드리고 또 지금 우리 사랑하는 우리 버디들이 함께 하고 있는데요. 우리 사랑부는 장애를 약재료로 삼아서 주님만 바라보고 갑니다. 사랑부는 장애인을 부를 때에 버디라고 불러요. 친한 친구라는 뜻인데 다정한 우리 버디들 보면 사랑스럽죠. 버디들이 정말 예배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정말 예배를 사모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은 정말 그 주님을 사모하는 그 마음으로 함께 예배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은혜 받으면 아멘 할렐루야 손을 들고 찬양도 하고 기도하듯이 우리 버디들도 은혜 받으면 막 뛰면서 찬양합니다. 그리고 소리도 질러요. 그렇게 주님을 찬양하는 걸 표현하는데 조금 낯설어도 주님의 시선으로 이렇게 사랑해 주시면 주님께서 기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3월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그래서 봄에 산과 들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면 기쁘시죠?. 심란하시나요? 그럼 병원 가셔야 되는데 기쁨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러분 퀴즈 하나 나가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뭘까요? 벚꽃 예, 장미꽃 예 바로 봄꽃입니다.
봄의 꽃 왜? 추운 겨울, 혹독한 시련을 다 뚫고 나온 봄에 핀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주님 보시기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그런 꽃이 있습니다. 바로 오직 주위에서만 바라보는 인생입니다. 우리 사랑부들이 고난에도 말씀 따라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먼저 사랑부에서 어떻게 말씀을 듣고 가는지 저와 함께 말씀 속으로 출발해보도록 할까요? 다 같이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사랑이에요. 황금 덩어리랍니다. 여러분 제일 좋아하시죠? 저는 오늘 주인님이 부르셔서 올라왔어요. 이 높은 산에 왔는데 너무 기대가 됩니다. 룰루랄라.
야 뭐가 기뻐? 아우 짜증나. 야 나는 여기까지 오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왜? 주인님은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거야. 아우 이 높은 산. 아유 더워. 아이 땀나 싫어. 그러지 마. 우리 주인님이 부르셨으면 다 뜻이 있겠지. 아이고 영차. 아 영차 아이고 영차 어휴 다 왔다. 안녕 나는 나무 조각목이야. 어휴 나도 주인님이 부르셔서 왔어. 야 가만 보아 하니까 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나무 조각 같은데, 너 여기가 어디라고 와? 네. 주제를 알아야지. 여기는 나처럼 멋지고 값비싼 황금 같은 나 같은 사람만 오는 거라고 주인님이 나만 받으실 거야.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나같이 초라한 녀석은 안 되겠다. 집에 가야 되나? 안 돼. 안 된다. 이래. 너도 초라하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주인님이 부르셨잖아. 아 맞다. 그러면 나도 여기 붙어만 가야지. 야 그런데 왜 오늘 우리 다 이렇게 모이려고 한 거야? 아 오늘 주인님이 모두 우리를 아름답게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신대. 그래 자 넌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이렇게 초라하니까 그냥 주걱 푸는 그 주걱 밥솥 주걱이 되면 좋겠어 나는 왕관이 되고 싶어. 왜냐고 왕관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나한테 절을 할 거니까 아 나는 주인님이 기뻐하시는 보석이 되고 싶어. 그러면 주인님과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잖아. 어머 저기 주인님이 오시네. 아이고 얘들아 아이고 다 모였니? 아이고 다 모였구나 그래. 얘들아 오늘 내가 특별히 할 일이 있단다.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쓸 귀한 성전의 도구를 만들 거예요. 어머 하나님이 쓰시는 성전의 도구요. 그거 어떻게 만들어요? 하나님이 쓰시는 성전의 도구란? 자, 내가 준비한 게 있어요. 바로 이 망치지. 이 망치로 잘 치면 귀한 작품이 나온단다. 자, 먼저 사랑이.
자, 준비됐지. 자, 간다. 에잇 좋다. 에잇 좋다. 아이고 아파요. 아니 특별한 양육을 하신다면서 왜 때려요? 얘야 잘 치는 사건을 겸비해 작품이 나온 거야. 다시 한번 한 번 한 번 섭섭하니까 두 번 하나 둘 에이 파 에이 파. 아이고 아파요. 얘야. 잘 봐봐. 너가 이렇게 아픈 사건을 치고 치는 사건을 잘 견디니까 여기 이렇게 너 안에서 더러운 곳이 나왔잖니? 미움과 시기, 질투, 어우 네 안에 이런 게 있었구나. 어 그러네요. 제가 치고 치는 사건을 잘 견디니까 내 죄가 보여요.
어후 내 죄가 내 고난보다 더 커요. 그 다음은 우리 왕짜증이 간다 준비하시고 하나 둘 헤이 뚝딱 헤이 뚝딱 아니 주인님은 왜 맨날 때리기만 하세요? 아파 죽겠네. 이거는 내가 생각하는 영광이 아니잖아요. 나 고난 싫어요. 고난 싫어. 얘야 고난이 축복이란 말 못 들어봤니? 자 봐 저분들도 고난이 축복이란 걸 알고 잘 말씀을 듣잖아. 가만요. 에헤이~ 고난 받을 짓을 했네. 에휴 고난당해도 싸요 저는 아니라고요. 저는 복을 주세요. 복을. 야 잘 참아야 주님의 영광이 될 수 있단다. 영광. 나 그런 거 필요 없어요. 복 주기 싫으면 그만둬요. 나 여기를 떠날 거야. 도저히 못 살겠어. 못 살겠다고. 왕짜증아 잘 봐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 어딨겠니? 말씀 따라 살아내지. 그래 난 싫어. 야 딱풀처럼 붙어가. 야 딱풀. 난 딱 싫어. 에이 간다. 아이고 갔네. 자 다음은 나무 차례. 자 준비됐니? 자 하나 둘. 자 잠깐이요. 주인님 잠깐만 왜 너도 떠나려고? 아니요. 하나님은 나 같은 초라 한 자도 쓰실까요? 아이고 어디 보자?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다. 야 너는 완전히 땡! 탈락이야 탈락 이라고 할 줄 알았지만 주님은 그래도 너 같은 자가 순종하면 쓰신단다. 아 그래요? 그러면 저도 순종할게요. 다시 한번 가볼까요? 폐 폐 힘을 주고 하나 둘 여러분 다 같이 뚝딱 시작 에잇 뚝딱 에잇 뚝딱 아이고 아파요. 마지막이라고 더세게 치면 어떡해요? 얘야 잘 참아야 돼. 자 마지막에는 너는 한 번 더 똑딱똑딱 얼추 된 것 같은데, 자 그러면 너는 이제 정금을 입혀주마. 으차차차 자, 정금을 입혀서 짜잔 우와 치고 치는 사건을 잘 견디니까 정금으로 입혀주셨어요. 우와 나도 정금같이 빛나요. 그렇게 치고 치는 사건을 잘 견딘 이 둘은 아름답게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죠. 우리 제일 먼저 뛰쳐나간 공동체를 뛰쳐나간 우리의 왕짜증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시죠? 다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시작 왕짜증아 나와봐. 내가 왕자지 난 우상이 됐지. 모두들 나에게 엎드려 복받고 싶지 않으세요? 집집마다 다 우상 한 마리 드리세요. 복. 복. 복이 제일이라고요. 아 그런데 어때? 분위기가 싸하네? 내가 터를 잘못 잡았나? 여러분 기회 놓치시는 거예요? 네. 안 되겠다. 아랫동네로 가야지 아이고 저런 고무재를 떠났던 친구는 우상에 빠지고 말았네요. 두 번째 친구 우리 나무가 있었죠. 우리 나무 어떻게 됐을지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시작 나무야. 어딨어? 나와 봐. 저 여기 있어요. 아유 치고치는 사건을 나에게 얹었더니, 억대가 됐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정말 귀한 모습으로 변화됐어요. 와우 와 치고 치는 사건을 잘 견디니까 이렇게 아름답게 변화됐네요. 와우 알렐루야.
자 우리 마지막 친구 하나 있죠? 누구죠? 사랑이 사랑이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 한번 다 같이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사랑아 나와 봐. 저는요 이렇게 금 등잔대가 됐어요. 와우 너무 아름답게 변했구나. 세상에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아름답게 쓰시려고 그렇게 그렇게 치셨구나. 얘야 너무 수고 많았어. 너무 잘 견뎠단다. 어유 이렇게 황금 덩이 하나 가지고 잎도 피고 아름다운 꽃을 매기까지 참 수고했어. 이 등단대를 만드려고 얼마나 치고 치는 사건을 견뎌야 했을까? 그런데 정말 잘 참았단다. 너무 아름다운 등잔대가 됐어요. 이제 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거라. 주님이 되어서 사람들의 마음이 있는 어둠의 빛을 주님의 영광의 빛을 환하게 밝쳐서 다 밝히도록 하거라. 너무 아름답게 변했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좋습니다. 우리도 말씀 듣고 가지만 가다 보면 이렇게 고난당할 때가 있어요. 그때 어째서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왜 나만 이러시냐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돼요. 우리 아빠들은 회사에 출근해서 왜 일을 그따위로 하면서 치고 치는 사건이 있죠. 그때 혼나서 너무 속상해서 남자들도 눈물 흘리고 집에 들어옵니다. 또 우리 아내는 어떨까요? 우리 엄마들도 속 썩이는 남편 속 썩이는 자녀 때문에 가슴을 쳐요. 하나님 왜 나에게 이렇게 하셨냐고 실수하셨다고 말하죠. 그리고 나는 너는 왜 이렇게 못났어? 너 왜 이렇게 안 되니? 하면서 하느님마다 안 돼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우리를 치고 치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서 주신 구원의 사건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어떻게 치고 치는 사건을 잘 견딜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날마다 힘들다고.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내 팔자야. 땅만 칠 게 아니라 내 가슴을 쳐야 됩니다. 내 가슴을 치면서. 아니 내가 죄인이라고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고난 속에 주님 앞에 나의 더러움을 내놓고 나갈 때 그렇게 회개하며 갈 때 주님께서 회복시켜줄 줄 믿습니다. 오늘 고난 중에 아픈 자녀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던 부스러기 은혜만 구했던 그 여인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던 그 어떤 고난도 또 아픔도 초라한 그 어떤 것도 오병이어 드렸던 그 아이의 마음처럼 주님께 생겼죠.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여러분의 가정에도 채워질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변화산으로 초대하면서 얘야 너도 이제 오직 예수만 보는 인생을 살라고 부르십니다. 이 시간 저와 함께 그 변화산에 오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마가복음 9장 2절에서 3절까지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돼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귀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휘어졌더라.)
우리가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십니까?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이 되려면 첫 번째 초막의 영광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2절, 3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3명의 제자들을 따로 불러서 높은 산으로 가십니다. 주님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시죠. 여기 변형되사 메테랑 모르프르테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변하는 그런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겁니다. 광체가 나면 이것도요.
수차례 물들은 금속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없는 그런 영광 부활의 빛을 예표합니다. 그리고 옷이 매우 희어진 것은 거룩함을 뜻하는데요. 주님 안에 영광과 거룩이 들어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은 영광의 본체, 거룩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인성과 심성이 합쳐진 모습 주님 다시 올 때에 그 아름다운 영광을 보여주신 거죠. 여기서 한번 우리 think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깜짝쇼도 아니고 왜 그러셨을까요? 바로 제자들에게 참된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자들은 주님을 따랐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세상 행복과 기복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님의 빛나 진짜 영광을 봐라. 그리고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요? 4절에 이에 엘리아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그 성공의 많은 인물들 중에 왜 하필이면 이 두 사람이 나왔을까요? 이 둘은 유대인에게서는 정말 특별한 존재입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들이 주님과 대화하면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온전히 성취할 이가 바로 메시아 예수님이라고 증거합니다. 이 구약과 신약의 역사적인 만남은 오직 구원자 예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주님은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변화산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매주일 예배와 간증을 통해서 그 변화산의 영광을 보여주시죠. 이혼과 바람 부도로 죽을 과정이 살아나고 또 고난이 축복인 것을 우리가 함께 봅니다. 목장 식구들도 삶을 약재료로 들여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종종 내 삶을 약재료가 아니라 식재료로 드리는 분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제가 그랬습니다.
목장 가니까 밥이 너무 맛있어요. 그래서 그 좋은 밥만 먹고 아내를 고발하고 내 옳음 나를 자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밥맛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희 목장에 한 분이 탐방을 오신 거예요. 밥 먹고 자랑만 합니다. 그런데 집에 갈 때 아내에게 그랬어요. 여보 어휴 나눔이 아니라 자랑만 하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 그러니까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더 해. 여보는 나눔이 아니라 설교를 하잖아. 그럽니다.
그 뒤로 입이 다물어졌습니다. 나의 옳고 그름의 율법적 가치관을 주님의 구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변화 받으라고 하시는데 참 우리가 안 됩니다. 끈질기게 안 변해요. 됐고요. 너나 먼저 변하세요. 이분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먼저 변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안 되는 우리를 특별히 양육하십니다. 따로 높은 산에 초대를 하십니다. 여기 이 산은 헤로몬산으로 추정하는데 해발이 2800m입니다. 그래서 한라산, 백두산보다 더 높고 정상은 1년 내내 눈이 마르지 않습니다. 덮여 있어요. 제자들이 그 높은 산에 올라가면서 얼마나 헉 되고 숨이 막혔을까요?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각자 높은 산처럼 쳐다만 봐도 숨이 안 쉬어지는 그런 힘든 가족들을 붙여주십니다. 여러 고난 중독 장애로 우리를 너무 지 치게 만들어요. 그래서 우리 안에 정죄와 무시 마음에서 선 긋고 투명인간을 취급하죠.
그런데 힘든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가정에 보내신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낮아져서 주여을 부르게 되고 또 세상을 향했던 그 나의 시선이 바로 주님께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우리 사랑부 어머님은요. 장애 아들을 데리고 평생 절에 다니셨는데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 공허함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침 사랑부 교사의 전도로 오셨는데 장애 고난에도 기뻐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그 버디들 부모님들의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리고 방황하는 시선이 그 장애아들 때문에 다시 주인께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예배 잘 나오세요.
또 한 분은요. 이혼 후에 아들만 바라보고 사셨어요. 그런데 그만 자폐장애 판정을 아들이 받게 됩니다. 그날 엄청 마음이 아파서 울었다고 하죠. 그런데 사랑부의 돌봄을 받고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일 말씀과 양육으로 살아나셔서 이제 놀이센터에서 만나는 어머니들을 많이 전도한다고 해요. 자녀의 장애를 약재료로 구원의 귀한 사명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힘든 자녀 또 가족들이 이 세상이 흘러 떠내려가는 나를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구원의 디딤돌인 줄 믿습니다. 아멘
5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고아데라비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쥐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합니다. 초막은요. 출애굽 백성이 광야 생활할 때 사용하던 임시 초소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빛난 영광을 보고 아 저거다 여기가 좋아요. 하면서 그 영광을 내 초막에 붙들려고 합니다. 황홀한 감정만 따르다가 주님과 원수가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곧 죽는다 하시는데 베드로는 아닙니다. 여기서 살 거예요.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말씀하시는데 아니에요. 저는 썩어질 초막, 영광 그거 달라구요? 라고 말합니다. 완전 노답이죠. 너무 어이가 없어도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 보면서 보니까요. 그 베드로의 모습이 저와 우리의 모습이더라고요. 변화산의 영광.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오늘 성공과 물질의 초막을 달라고요. 그 영광을 달라고요. 외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술, 담배의 초막, 주식 도박 중독의 초막을 짓습니다. 혼자가 좋사오니 하면서 각방의 초막, 별거의 초막, 나중에는 은밀한 바람의 초막을 짓습니다. 신교제는 너무 힘들고요. 남자 너무 좋아요. 여자 너무 좋아요. 그래서 불신교제의 초막을 떠나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이 제일이야. 가족을 위해서 노후 대책에 초막을 짓느라 정작 예배와 큐티는 뒷전입니다. 그런데요. 이 모든 세상의 초막 영광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썩은 나뭇가지와 줄기로 만든 헛된 가짜 영광입니다.
여러분 왜 베드로는 이런 헛된 헛소리를 했을까요?
그 답이 6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함께 봅니다.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여기 좋사오니 하면서 그 초막 영광에 빠질까요? 저도 참 잘 빠지는데요. 바로 이 혈루의 근원은 두려움입니다. 앞날의 걱정, 내 행복을 놓칠 것 같은 그 두려움이죠. 주님을 온전히 믿지 않게 오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이 초막신앙이 더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마태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원하시면 주님을 위해서 짓겠나이다 라고 합니다. 신앙 명분이 그럴싸하니까 우리가 거기에 다 착각에 빠지게 되는 거죠. 복 주시면 주님 위해 드리겠다고 물질우상 좋은 자녀 달라고 자녀 우상의 초막을 합리화합니다. 고난 없는 그 영광의 초막만 붙드는 이 욕망이 얼마나 끈질긴지요.
도대체 내가 나중에는 무슨 말 하는지를 모를 지경입니다.
적용질문드립니다.
나를 주님께로 초점을 맞추게 하는 내 인생의 모세와 엘리야는 누구입니까? 나는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며 어떤 세상의 초막을 짓고 싶으십니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를 정도로 내뱉는 막말은 무엇인가요?
두 번째 우리가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의 인생이 되려면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7절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여전히 세상 초막만을 원하니까요. 더 큰 사건이 옵니다. 구름이 덮이고 앞이 막히는 사건이 찾아오죠. 마태는 구름 속에서 빛이 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죠.
즉 내 고난의 구름 속에도 내 혼돈의 구름 속에도 빛난 하나님의 음성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이 들려야 내 인생이 해석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빛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들음이 아니라 듣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그렇게 말씀 따라 나가는 것을 뜻하죠. 마태복음에서는 여기에 내 기뻐하는 자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살 때 누구를 사랑하고 기뻐해야 할지를 알려주십니다. 우리 짧은 인생에서 헛된 세상 초막 또 가족 우상 삼지 말고 오직 예수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사랑하는 버디들이 있는데요. 제가 사랑부 담당하다 보니까 참 마음 아플 때가 있어요. 그게 언제냐면 우리 버디들을 가끔 종종 부모에게 버림을 받구요. 또 투명인간 취급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구름 같은 장애의 고난 속에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 택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힘들어 버리고 싶은 그 가족 그 지체도 주님은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부의 한 부모님은 우리는 최고의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라고 하십니다. 로또를 맞았나? 땅이 많은가? 그게 아닙니다. 지적장애인의 딸이 하나 있는데, 예배를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꼬집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꼬집는데 그러면 그냥 당합니다. 그때 큐티하면서 오늘 당할 일은 무엇일까? 라고 해석합니다.
또 딸이 선천적인 변비로 3일마다 관장을 한대요. 경기도 하고 감기만 걸려도 가만 내 죄가 뭐지? 하며 서로 큐티하며 회개하십니다. 매일 큐티 말씀을 바라보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복이라고 고백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고난 속에서도 예수만 보이는 인생, 예수만 기쁨이 되는 인생인 줄 믿습니다.
8절에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어요.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더라. 무서워하는 제자들 주님께서 손을 대시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얘야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제자들 눈을 들어보니까 오직 예수만 보여요.
우리가 생각해보시죠. 말씀 따라 적용하는 거 처음엔 가능하죠. 주의일 할 때 가능하죠. 그런데 밖에 나가는 순간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때로는 고난 또는 때로는 장애, 때로는 중독 속에서 우리가 너무 힘들어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가오셔서 얘야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라고 어루만져 주십니다. 여러분 대책이 없는 남편, 변하지 않는 아내 또 끝이 안 보이는 자녀 고난 때문에 많이 힘드십니까? 그때 포기하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오직 예수만 바라보는 것인 줄 믿습니다. 아멘
한 달 전 저에게도 구름같이 덮이는 힘든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이게 밖에서 빨리 뛰어가는데 갑자기 종아리 근육이 찢어진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어휴 하필 오른쪽입니다. 운전을 못하고요. 그러니 꼼짝 못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귀한 진리를 하나 깨달았어요. 여러분 다칠려면 왼발이나 왼손을 다쳐야 하십니다. 아멘.
이거 아멘 하시면 안 됩니다. 사랑 헌신 예배를 앞두고 좀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마침 집에 의자가 바퀴가 달렸더라고요. 그래서 아우 휠체어 삼았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방학이라서 불렀어요. 아들아 나 좀 미뤄줘. 화장실 가야 돼. 밀어줍니다. 아들아 나 좀 밀어줘. 다시 방에 넣어줘 합니다. 얘야 고마워. 물 좀 주렴. 얘야 고마워. 볼펜 좀 갖다 줘. 처음에는 아빠 힘들어?. 내가 뭐 도와줄까? 이럽니다. 그러더니, 왜 나만 시켜요? 형 시켜요? 아이 동생 시켜요. 저는 한 5번 했는데 애들이 아니라고 아빠 50번을 시켰다고 뻥을 튀깁니다. 그러다가 둘째, 아들이 갑자기 자, 학원 가야지 하면서 집을 나갑니다. 그러다 큰아들도 난 도서관 가야 돼 하면서 집을 나갑니다. 갑자기 안 하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예요. 며칠 후에는 아침부터 애들이 안 보입니다. 아예 새벽부터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언제 오나 기다렸는데 밤늦게 돌아옵니다. 방학인데 말이죠. 정말 서운합니다. 여러분 자식은 배반당해하기 위해서 키운다는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렇게 바쁜 일상으로 제 삶이 강제 셧다운 됐어요. 그러면서 조용히 큐티를 하는데 문득 큰 아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오늘 보신 이 등잔대 설교는요. 제가 10년 전에 저희 큰아들이 경계성 지능 장애 판정을 받고 마음이 무너지고 눈물이 앞을 가릴 때 미취학 유아부에서 했던 설교입니다. 그때 말씀을 전하면서 그래 고난이 축복이지.
예수님도 치고 치는 그 십자가의 사건으로 나에게 생명의 빛을 밝혀주셨어 하면서 촛불 하나하나 켜면서 주님의 빛난 영광을 어렴풋이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힘든 시절 공동체의 위로와 기도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들은 경계성에서 벗어나 좋아졌습니다. 이제 됐네. 고난이 축복이야. 말씀이 딱 맞네. 이제 고난 끝 축복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치고 치는 그 먹구름이 계속 찾아옵니다.
저희 아들이 가만히 있다가 꼭 밤 10시가 넘으면 집에 큰 소리가 납니다. 어느 날은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저희 집이 층간소음으로 너무 예민한데 그래서 참다 참다 저의 혈기가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야단을 쳤어요. 너 그러면 안 되지? 지금 몇 시니 했습니다. 결국 몸싸움이 났고 아들에게서 쌍욕이 날라옵니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X, Y, Z 열여덟 땡땡 어우 제 인생에도 자식에게 욕먹는 일이 찾아오더라고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들은 더 공부 안 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습니다. 말이 안 통해요. 그런데 이번에 큐티하는데 이 사건이 떠오르면서 네 죄가 크게 보입니다.
저는 야 고3이니까. 이제 공부해야지 왜 너는 맨날 노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잔소리를 했죠. 그랬더니, 아들이 왜 그런지 알어? 우울한데 정말 살기 위해서 노는 걸로 버틴다고 라고 말을 합니다.
그 말이 그런데 저한테는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내 전통, 내 외식 옳고 그름의 그 낡은 가죽대로 이 아들이 자라나는 동안 이렇게 힘들게 했구나. AD가 있으면 약효가 떨어지면 뒤로 밤에 떨어지는데 난리 칩니다. 그러면 그걸 좀 품어주면 되잖아요. 제가 목사잖아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세상이 뒤처지지 않으면 이제 너 다시 열심히 노력해야 되면서 정죄의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부재중에 아빠로 피곤하다면서 아들의 고민과 우울의 눈물이는 정작 외면을 했습니다. 내 기준 강박 고정관념의 무덤에서 그 잔소리의 쇠사슬을 휘두르는 녀석이 그 귀신 들린 자가 아들이 아니라 바로 저인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아들아 미안해 아빠가 헛된 자녀우상의 초막을 짓다가 너한테 큰 상처를 줬다.정말 미안해하면서 눈물로 용서를 구했고 내가 그동안 했던 잔소리 막말을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큰아들이 가족 큐티를 할 때 이런 고백을 해요. 내가 못하고 안 되는 게 많잖아.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럽더라고. 그래도 이러는 데는 다 뜻이 있지 않을까? 분명 하나님은 이런 나도 어떻게든 쓰시겠지 아빠 내가 힘드니까 공부는 잘 안 돼도 아침에 큐티는 꼭 해요. 라고 합니다. 아들도 자기가 안 되니까. 그걸 자기가 알아요. 그 고난에서 눈물로 주님을 바라보며 가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아들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도대체 이렇게 주님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탄식과 눈물의 회개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죽으면 오직 주만 보이는 인생이 아니라 잔소리와 혈기로 예수만 가리우는 인생이 될 것 같아서 회개가 저절로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제 말씀드리려면 먹구름의 그 사건에서 배우자와 지체들 또 자녀들 그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지 못하면 귀를 막으면 주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적용질문드립니다.
고난의 구름 사건 속에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오직 예수 외의 다른 소리와 다른 것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뒷모습에서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이십니까? 아니면 무엇이 보이는 인생이십니까?
세 번째로, 우리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의 인생이 되려면 십자가의 영광을 붙들라 하십니다.
9절에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루지 말라 하십니다.
주님과 제자들은 이제 그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고통과 눈물이 기다리고 있는 그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면 주일날 은혜를 경험하면 다시 한 주 동안 내 사랑하는 힘들게 하는 부모 나를 괴롭게 하는 자녀, 그 친구들을 향해서 정말 사명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런데 왜 주님은 증인 되려면 본 것을 말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왜 경고하며 말리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십자가 없는 영광과 로마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만 찾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이 땅 안에 있는 우리 가족들은 십자가 없는 고난 필요 없고 주님 돈 주세요, 영광 주세요, 합격시켜주세요. 이것만 바래요. 나를 고난에서 꺼내줄 그 메시야. 정치적인 메시야만 찾습니다. 그때 우리가 오늘 말씀처럼 듣는 자의 믿음을 따라서 칼날 위에 물방울처럼 말할 때와 침묵할 때, 나갈 때와 멈출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10절에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서로 문의하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제자들은 이렇게 주님께 양육을 받는데도 아직 변화산의 영광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서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요? 이게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즉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원하실 것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변화산 이후에는 이제 상황이 급박하게 변합니다. 더 고난과 핍박이 많아지고 그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날 너무 안타까우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진짜 영광을 보여주시면서 얘들아 봐. 이게 진짜 영광이야.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얻는 줄 알아? 바로 십자가를 통과할 때만 얻는 거란다. 너희들이 걸어갈 그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 바로 영광의 길이야 라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제자들은 잘 몰랐지만 그래도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훗날 베드로는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죠. 야고보는 주님의 열두 제자 중 최초로 순교합니다. 요한은요. 혹독한 그 반모섬에서 요한 계시록을 남겼습니다. 그들 모두 십자가 영광을 붙들면서 예수만 보이는 인생, 예수만 보여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말합니다. 주님 저 몰라요. 말씀 안 들리고 부족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모두에게 말씀합니다. 괜찮어? 많은 부족하고 잘 몰라도 마음의 말씀을 두면 십자가를 길 수 있는 인생으로 주님께서 변화시켜 줄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십자가의 영광을 붙들고 나의 변화산 하에서 갈보리 십자가산으로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제가 사랑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 한 버디가 이렇게 나눔하더라고요. 아이고 목사님 어쩌면 좋아요.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저 꼭 할 말 있어요? 뭐야? 말해봐. 목사님 수고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이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잘해주세요. 부탁합니다. 그리고 바로 신임사역자가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버디들이요 우와 새로 오신 목사님이다. 달려갑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이름이 뭐예요? 1분도 안 돼서 태세 전환 모두 빵 터졌습니다. 역시 우리 사랑부 버디들도 우리 교인들답습니다. 구속사적인 가치관으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나갑니다. 그리고 그 버디가 저희 아내에게 편지를 썼어요. 열어보니깐 사모님 목사님을 잘 부탁드려요. 꼭이요.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이 버디 때문에 내가 당신을 끝까지 데리고 갈게. 버디들이 이혼을 막고 남의 가정까지 지켜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사랑부가 이런 실력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랑부 교사들도 참 수고가 많아요. 때로는 맞기도 하고 꼬집히기도 하고 머리털로 뽑힙니다. 뽑히면 더 뽑아라. 어차피 죽으면 썩어지려면 육신 뽑혀 뽑아 하면서 머리를 들이게 됨입니다. 그렇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합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 바라보며 걸어갑니다. 주님께서 글 수고 기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한 버디가요 태어날 때 뇌 손상으로 평생 전동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어머님 하시는 말씀이 저희 아들이 사랑부예배를 제일 좋아합니다. 교회 오는 길이면 딱 그 길에 들어설 때 기뻐서 막 흥얼거려요. 제가 놀란 것은요. 이 버디는요. 예배드릴 때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어요. 소통이 안 돼요. 그래서 왔어? 하고 인사하면 대답도 안 해요. 못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를 사모하면서 비록 육신의 힘든 장애가 있지만 묵묵히 매주마다 그 장애를 십자가를 치고 주님 앞에 나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버디들이 부모들이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마음에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갈급한 사랑과 사무함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주님만 보이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랑부의 생생한 고백을 함께 영상으로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 효주가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데, 우리가 아무렇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거든요. 혼자 스스로 할 수도 없고 그런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아플 수도 없고 쉴 수도 없기도 하고요.
세종이는 뇌전증이 좀 심해서 잠을 거의 못 자는 상태고요. 가래가 많기 때문에 석션도 많이 해야 하고요. 또 먹는 것도 또 위루관으로 먹어야 되고요. 또 누워만 있으니까 기저귀도 갈아야 돼서 늘 제가 붙어 있어야 합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 아이인가? 왜 하나님께서 이런 자녀를 두셨을까? 하나님은 정말 많이 원망했던 것 같아요.-
며칠씩 잠을 못 자면 너무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게 무슨 축복이냐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목 놓아 울면서 정말 하나님이 대적하는 말들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진단을 받은 날 저희 집에서 부부 목장이 있었어요. 그래서 눈물을 참고 밥을 하고 있었는데, 권찰님이 들어오시자마자 둘이 눈이 딱 마주쳤는데 엄청 울어주셨어요-
아이가 아플 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이랑 소통이 되지 않으니까 어디가 아픈지 사실은 자세하게 알 수가 없거든요. 또 선생님들이 장애가 많은 걸 아니까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민폐해지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우리도 교회 오기 전에 장애가 있는데, 말씀으로 해석이 안 될 때가 우울증도 좀 심하고 질문이 6층 밖을 내다보면서 떨어져서 죽을까? 굉장히 우울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을 때 우리들 교회 목장으로 인도가 됐고 그 이후로 말씀이 들리면서 점점 회복이 됐고 사실 남편이 어제도 부부 목장에서 그러더라고요. 우리들 교회 안 왔으면 이혼했을 거라고요? -
저는 제가 그래도 아픈 아이 키우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와서 말씀을 들으니까 제 안에 교만도 많이 보게 하시고 제가 쌓았던 분노와 혈기 이런 것들도 또 알게 하셔서 남편하고 가족한테 되게 미안했고 사과하는 계기도 있었고요-
세상에 어떤 위로와 어떠한 것도 장애아를 갖고 있는 부모한테 도움이 안 될 겁니다. 말씀으로 은혜를 받는 것만이 우리가 어렵고 힘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큰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 역시 사랑도 덕분에 매주 힘을 얻고 한 주, 한 주 그 일주일을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는 사실 준호를 이렇게 어떤 잣대로 판단을 하고 항상 어떤 게 부족하다 어떤 걸 고쳐야 된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그냥 진짜로 있는 모습. 그대로 너무 사랑해 주시는 게 준우도 느껴지고 저도 느껴져요.-
저희 교회 오면 주차도 양보해 주시고 엘리베이터 하기가 되게 어려운데 성동이님들이 많이 양보를 해주셔서 불편한 내색 안 해주시고 이렇게 해주시는 배려들이 너무 감사하고 특별히 저희 사랑부 선생님들이 또 많이 배려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늘 저의 자랑입니다. 사랑부 최고 선생님들 사랑합니다-
.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닿는 표어거든요. 고난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교회에 오지도 못했을 거고, 준우는 정말 보석이거든요. 그러면 장애아가 보석이라는 얘기를 세상 어느 곳에서 하겠습니까? -
장애아들을 키우는 그 자체가 사명이다라는 게 저한테 뚫고 들어와
정말 힘드시고 막막하실 때마다 우리 태종이가 약재료가 돼서 존재만으로 감사하다 -
사랑부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사랑부에도 우리 장애에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버디들이 각 가정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되어서 상한 영혼 다시 일으켜 주님께로 인도하는 그 십자가 영광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버디들도 천국의 변화산에서 변할 겁니다. 장애의 몸에서 거룩한 몸으로 슬픔의 눈물에서 구원의 눈물로 변할 겁니다. 그리고 그동안 말 못했던 고백을 할 것 같아요. 선생님 참 고마웠다고. 나 그때 장애고난에서 너무 힘들 때 그 길에서 함께 울어주고 함께 아파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그날 목장에서 우리가 그렇게 힘들어했던 속 썩였던 지체들도 우리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던 철없는 가족들도 영광된 모습으로 변할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 때문에 수고 많았다구 힘든 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수 믿게 해줘서 고맙다 라고 우리에게 고백할 것입니다.
사랑하는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이 십자가 지면서 예수만 보이는 인생 살기를 소망합니다. 상처가 별처럼 빛나는 인생 되시기를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적용 질문 드립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며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내 눈에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내 삶에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기 위해 오늘 한 가지 결단할 것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밑동 짤린 나무 같은 인생길에 오늘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너도 이제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요? 초막의 영광을 버리라 하십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십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붙들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내 눈에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오직 내 삶에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변화산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진짜 영광을 보라 하십니다.
그 주님은 우리에게도 너도 이 진짜 영광을 바라보고 예수만 길러놓고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라고 십자가를 지고 사람을 살리는 인생이 되라 하십니다. 고난의 그 끊이지 않는 구름의 사건 속에서 그래도 주님 바라보며 그 말씀이 들리도록 주여 내 귀와 내 눈을 열어주시옵모서 초막 영광 대신에 아직도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 붙잡아 주시고 이제는 초막 영광 대신 십자가 영광을 붙들며 살 수 있도록 그 사명의 자리에서 질만 붙들도록 기도합시다. 내 눈에 오직 예수만 보이도록 내 삶에 오직 예수만 보이도록 그런 인생 나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오늘 특별히 3.1절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드릴 수 없는데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땅을 치며 가슴을 치며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로 말씀으로 이 땅을 복음으로 지켰습니다.
그 땅 이제 주여 이 땅에도 다시 한번 변화산의 영광을 품어주시고 이 나라를 살려달라고 주여 일창하시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변화산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너무나 부족한 제자들에게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그 십자가 길을 따라오라고 하셨는데 주님 저는 여전히 세상 행복과 기복의 초막만을 짓습니다. 여기가 좋다고 계속 그 어리석은 길을 가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제는 다해 그 길을 걸어왔던 그 영광 저도 붙들고 주님 따라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우리 눈에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삶이 언제가 끝날텐데 우리 삶의 그 뒷모습에서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되도록 주여 붙잡아주시옵소서 끝없는 고난의 구름 속에서도 지쳐 쓰러질 그때에도 하나님 찾아오셔서 들려주시는 그 음성 듣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사랑부 헌신예배드립니다.
일생 장애 고난으로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주님 말씀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 버디들과 그 가족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주님께서 친히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힘든 삶이지만 장애를 삶으로 약재료로 드리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 붙들고 끝까지 걸어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 신앙 고백으로 드린 예물을 받아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사 팔복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사업하는 모든 아이디어와 또 프로젝트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담임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두바이와 유럽의 땅을 선포되어지고 또 선포되었던 그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 유럽 땅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병이어의 은혜에 큰 물결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특별히 3.1절입니다.
이 나라의 자유를 위해서 눈물로 신앙을 지키며 이 땅을 지켰던 그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하나님 다시 이 땅에 정치, 경제, 교육, 안보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산의 그 주님의 영광의 빛으로 비춰주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차별금지법과 모든 악법 인권이 우선시되는 모든 악법들을 막아주시고 이제 오는 새해에도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이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걸 주님께 맡기오며 존경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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