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마가복음 1:35-45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설교 스크립트 요약]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삶
사실 본인이 자기 소개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는 게 그 사람의 어떤 진짜 모습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요요 목사 최대규 목사입니다
오늘 청년국 헌신 예배로 예배를 드리는데요 저도 청년이 아니고 사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사실 청년이 아니실 텐데 그래도 우리가 마음은 청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옆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아직 청년이십니다
저는 예수의 뒤를 따라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얼마 전 인천공항에 마중 나갈 일이 있어서 나갔습니다 도착 입국장에서 진기한 장면을 하나 봤는데요 중국인 20대 여성 여명이 손에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너무 궁금해서 저도 뭐예요? 누구 왔어요? 했더니 아이돌이 지금 입국한다는 거예요 저도 그 대열에 껴서 핸드폰을 들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리는 거예요 입국한 거예요 경호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뒤로 수많은 여성들이 뒤따라갔습니다 참 연예인은 연예인이더라고요 키도 크고 얼굴도 조그만하고 참 그렇던데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 주의를 맴도는 사람들을 팬이라고 부릅니다
이 카일 아이들먼이 쓴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변을 맴도는 팬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가 예수님을 응원하고 감탄하지만 손해를 감수할 때는 희생을 따를 때는 뒤로 물러서는 팬이 되지 말고 자신을 들여서 그분의 뒤를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유명 인사가 되셨습니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온 거예요 이때의 상황이 오늘 본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36절에 이렇게 돼 있죠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른 걸까요? 여기에 이렇게 오늘 교회에 오셨는데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교회를 오신 겁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뒤를 따를 때에 십자가의 길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이거에 대해서 우리가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삶은 첫 번째로 기도 속에 안식을 누리는 삶입니다
어디서 안식을 누린다고요 기도에서 안식을 누린다는 겁니다
자 우리 35절 말씀 읽겠습니다 시작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하셨다고 해요
예수님이 전날 어떤 날을 보냈냐면요 하루 전날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설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귀신 들린 자가 나타나서 예수님이 그를 간절히 기도하고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끝난 게 아니에요 이후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집으로 갔습니다 가서 좀 쉬실까 했는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이 나서 지금 누워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고 그녀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바쁜 하루를 보내셨어요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이 사역이 끝나고 좀 쉬실까요? 아니요 예수님의 장모가 고침받았다는 소식이 그 동네에 다 퍼져서 수많은 각색 병자들이 그 집 앞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이게 33절이에요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님이 그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일일이 다 기도해 주시고 안아 주시고 귀신을 쫓아 주시고 그렇게 그렇게 사역을 하셨습니다 밤 늦게까지 그런 사역을 하신 거예요
저도 이제 아침 6시에 교회에 출근해서 1부 2부 3부 4부 예배드리고 청년부니까 목장 탐방 가고 끝나면 목자 모임 들어가서 양육하고 집에 돌아가면 9시쯤 되는데 참 기진맥진 저는 하더라고요 우리 예수님도 육체를 가지신 한계를 가지신 인간이신데 사람이신데 이렇게 하루 종일 사역을 감당하시는 게 참 피곤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다음 날 예수님이 새벽 일찍 일어나신 거예요 그리고 동네를 벗어나서 한적한 곳 아무도 없는 곳에 찾아가셔서 기도하신 겁니다 왜요 안 피곤하셔서요? 아니요 피곤한 육체를 일으켜 세워서 가신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이 기도가 가장 큰 안식이고 쉼이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서 안식을 찾으시나요? 참 우리도 너무 인생이 힘들어요 피곤합니다 어디서 안식을 찾습니까? 이리저리 안식을 찾아요 나를 좀 안 찾았으면 좋겠다 알람도 다 꺼 놓고 늘어지게 늦기까지 좀 잠을 자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참 보상 심리로 맛집을 찾아다니고 아니면 보고 싶었던 영상을 찾기도 하는데 찝찝한 피곤함이 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방해도 없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한적한 곳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교회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 거실 집 거실일 수도 있고 사무실일 수도 있고 차 안일 수도 있고 화장실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 아내가 이 직장 생활도 하고 아이들도 양육하고 참 하루하루가 바쁘잖아요 그 지쳐요 하루가 지쳐요 저희 아내가 이제 집에서 기도하는 장소가 있는데 그 공간이 어디냐면 이 주방에 있는 냉장고 바로 앞에서 늘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제가 냉장고 문을 열까 싶어서. 저는 이제 냉장고에서 안식을 찾는데 제 아내는 이제 그 자리에 앉아서 기도를 딱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하루하루가 참 바쁘니까 그 자리에 앉아서 주님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기에게는 쉼이고 안식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 기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안식이셨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사실 안식인 거예요
여러분 지난 여름에 TT 가셨죠 올 여름에도 이제 경상도로 TT를 이제 갈 건데요 잠자리도 불편하고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죄 고백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니까요 깊은 안식이 거기에 있습니다 요즘 호텔로 바캉스를 간다고 하잖아요 호캉스를 간다고 하잖아요 저희 아이들도 그렇게 좋은 곳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거 먹이고 집에 돌아오면요 엄마 아빠 이렇게 좋은 데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적이 없습니다 집이 왜 이렇게 안 좋냐고 불평을 해요 그래서 여러분 TT캉스를 가셔야 됩니다 TT캉스 TT 바캉스 그러면 애들이 집에 오면 얘기합니다 와 집이 좋구나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에 안식이 있는데 내 뜻대로 행하면요 헛수고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참 드러나신 사역을 많이 하신 걸로 보이지만 사실 사람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쓰셨어요 사역이 너무 바쁘셔서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셨고 사역이 조금 일찍 끝나실 때면 저녁에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잠을 들지 못하는 십자가 지시기 전 그 밤에는 번민스러울 정도로 밤에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 못 할 핑계를 대지 아니하고 기도를 계획하셨어요 우리가 핸드폰을 다 들고 계시잖아요 그 어떤 핸드폰이든 좋은거든 나쁜거든 최신이든 옛날거든 하루 종일 쓰고 집에 돌아가면 뭐 합니까 충전을 해야 되잖아요 우리의 영혼도 말씀과 기도로 충전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 기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우리 가운데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 가운데 안식을 하셨는데 그러면 제자들은 어땠을까?
이게 36절에 나옵니다 36절 시작 예수 자 그들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예수의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도 기도하러 간 것일까요 원문에 보면요 이들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따른 게 아니고 사냥감을 쫓듯이 막 추격하였다는 거예요 막 예수님을 찾으려고 샅샅이 뒤졌다는 의미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니까 예수님이 안 보이는 거예요 예수님을 막 쫓아가기 시작한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 때문이에요 37절 시작 예수님 지금 이곳에서 한가하게 기도할 때가 아니에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는데 빨리 가셔야죠 예수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예수님을 재촉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에게는 기도가 너무 큰 안식인데 제자들에게는 기도가 너무 낭비처럼 보이는 겁니다 제자들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병든 사람이 너무 안쓰러워서 빨리 가서 고쳐 주라고 하신 걸까요? 그게 아니고 지금 가버나움은요 예수님이 행한 일들 때문에 지금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올라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이 많아요 다 예수를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인기에 제자들이 취해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의 열광에 제자들의 마음이 뺏겨 버린 겁니다 본인이 무엇이라도 좀 된 줄 아는 거예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인데 자기가 뭔가 된 줄 착각하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성공적인 사역으로 인하여서 그들은 이제 뭔가 특권 의식이 그들 마음에 생긴 거예요
요즘 큐페 시즌이잖아요 중등부 큐페도 오늘 하고 있고 위드 큐페도 오늘 하고 있고 돌아오는 주는 이제 청년국 큐페 를 하는데 예전에 이제 동료 사역자들과 큐페 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한 전도사님이 아 자기가 군 생활 할 때 다니던 교회가 근처에 있으니까 한번 들렀다 가자는 거예요 군 교회였습니다 가 보니까 정말 큰 교회더라고요 문이 잠겨 있어서 밖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려고 한 찰나에 이 중령 한 분이 오시는 겁니다 아마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신 거 같아요 군목 목사님이신 거 같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너무 신기하게 제 신학교 선배인 거예요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신기해서 선배님 막 제가 이렇게 했어요 선배님 본인이 본인을 소개하기를 아 자기가 여기 담임 목사라는 거예요 얼마 전에 여기 부임해 왔다 뭐 이런 얘기를 탁 멋있게 장군처럼 중령이신데 장군처럼 이렇게 탁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요즘 뭐 하냐라고 묻길래 제가 이제 작은 소리로 부목사 해요 이렇게 겸손하게 부목사 해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얘기를 듣자 약간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네가 목사를 한다고 같은 신학교를 나왔는데 같은 기숙사 방도 썼는데 네가 목사라고 음 약간 놀라는 눈치인 것은 제가 참 사실은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같이 이제 기숙사 생활 이렇게 하는데 새벽 기도 가기 싫어 가지고 화장실에 막 숨어 있고 그 선배가 같은 방을 썼는데 아우 대규야 방이 좀 더럽지 이러면 하나도 안 더러운데요 막 이렇게 하면서 이게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그 선배가 볼 때는 제가 목사가 됐다는 게 너무 놀라운 거예요 목사라고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사역하니라고 묻길래 제 옆에 있던 동료 목사님이 뭔가 저를 대변해서 얘기를 해 주고 싶었나 봐요 김양재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우리들 교회에서 사역합니다 이렇게 막 옆에서 얘기를 해 준 거예요 근데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때부터 그 선배님의 눈빛이 좀 달라진 거예요 네가 어떻게 가냐 이런 식인 겁니다 그 김양재 목사님 그 얼마나 유명하신 목사님이고 그 큰 교회 대단한 교회인데 네가 어떻게 갔냐 이런 눈빛으로 저를 약간 이렇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옆에 있던 목사님이 근데 우리 최대규 목사님이 그 청년국의 총괄 목사님이 아 내가 아 뭐 그런 것까지 얘기해 막 아우 뭐 이렇게 총괄 목사님이라고 이렇게 하면서 청년들이 3,500명이 막 넘는다고 막 얘기하길래 아 뭐 그런 것까지 얘기하고 막 제가 막 그랬어요 음 음 그랬더니 그 선배님이 진짜 와 막 이러면서 야 대규야 너 대단하다 이러면서 저를 달리 보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제 안에 뭐 소명 의식이 불타오르는 게 아니고 특권 의식이 생겼어요 아까까지는 막 선배님 하다가 갑자기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아유 선배님 제가 연락을 한번 드릴게요
여러분 이게 이게 사람들의 인기와 사람들의 박수에 휘둘리는 게 우리의 인생인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안식을 찾으려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재촉하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데 예수님보다 앞질러서 가려고 합니다 내 생각과는 다른 자리에 계실 수도 있는데 그래서 조급함이 올라와도 조금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냥 내가 원하는 그 자리에 예수님 빨리 오기를 재촉하는 것입니다 승진과 합격과 성공과 인정의 그 자리에 예수님 빨리 오시라고 새벽부터 예수님을 쫓아간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라도 주님을 찾는 것이 아예 무시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만약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지 않고 이 제자들을 찾았다면 그들은 주님을 쫓아오지도 않았을 것이에요 우리도 내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하는 일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어디 계시든 상관하지 않았잖아요 우리가 왜 예수님을 찾겠습니까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그 사건을 통하여 주님을 찾는 것이에요
제가 지난주 부목자님 나눔을 하나 읽었는데요 이 부목자님의 큐티 나눔입니다 그대로 한번 읽을게요 이분이 어떻게 주님을 찾게 됐는지 저는 아들이 세 명이 있습니다 둘째는 제게 큰 우상이었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를 통해 제 만족과 자랑을 채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출과 학교를 거부하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고 술과 담배 등 제가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 보면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폭력적인 방법으로라도 붙잡아 보려고 했습니다 참 너무 지옥 같았는데 이보다 더 힘든 지옥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2024년 6월 둘째 아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생을 마감하기 한 시간 반 전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고 그 통화의 끝에서 아이는 아빠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감사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고난이 축복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고난으로 인하여 저는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깊은 우울 속에서 여전히 세상만 바라보며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아이 장례가 잡히지 않고 영안실에 머물던 날 그날의 큐티 말씀이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저는 처음으로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동안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제 자아가 너무 강하여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힘은 없고 하나님이 정말 나의 목자이시구나라는 고백이 제 안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자식을 잃은 이 아픔이 이렇게 큰데 하나님은 나를 자녀로 삼으신 분이니 그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실까 하나님께서 제 아픔을 아시고 제 모든 상황을 아신다는 위로를 깊이 받았습니다
저에게 목장은 은혜의 자리입니다 많은 기도를 받았고 그 기도로 우리 가정이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자녀를 잃는 큰 고난을 겪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기도가 안식이십니까?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안식을 얻고자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큐티 목장 기도가 진정한 안식이 되고 있습니까 특권 의식으로 누리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삶은 첫 번째 뭐라고요 기도 속에 안식을 누린다고요
두 번째는 한 사람의 길 위를 걷는 삶입니다
자 우리 38절 39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사명을 재확인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습니다라는 달콤한 유혹을 거절하시고 다른 마을들로 가서 전도하자 내가 이것 때문에 왔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익숙하고 편한 길 사람들이 많은 그 길을 떠나 험난할지라도 영혼 구원의 길을 가십니다
그래서 한창 인기가 좋은 그 가버나움을 떠나서 이 갈릴리 전 지역을 이제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여러분 갈릴리 지역이 이 작은 동네가 아니에요 조그마한 동네가 아닙니다 갈릴리 전체의 지역은 제주도 크기보다 조금 작은 크기입니다 지금도 제주도를 걸어서 막 전 지역을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닐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그 갈릴리 전 지역을 다니셨는데 지금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는요 이 평지가 있어서 길이 잘 닦인 동네입니다 예수님이 큰 길 넓은 길 다니시면서 전도하셔도 충분합니다 사역도 편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상부 갈릴리로 가셔서 산악 지대인 그 갈릴리로 가셔서 좁은 길을 걸어가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제자들이 기쁘게 따랐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불평했다는 말도 없어요 어떤 길이든 그냥 예수님이 가자고 하시니까 따라갔던 거 같습니다 예수님이 너 왜 이렇게 기쁘게 안 따라와 너 왜 이렇게 감사가 없어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자녀가 교회를 군말 없이 따라와 주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인데 너 왜 이렇게 기쁘게 안 와 혹시 이러지 않습니까 너 왜 이렇게 기쁘게 큐페 안 가 너 엄마가 차려준 거 왜 이렇게 기쁘게 안 먹어라고 하는 부모인가 아닌지 한번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제 아내가 돌아보기를 바라요
한 마을지기님이 청년 자기 이제 자신의 아들 청년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네가 뭘 하고 다니든 네가 게임을 하든 말든 네가 뭐 집에 빨리 들어오든 늦게 들어오든 네가 술을 먹고 다니든 안 마시든 아빠가 너한테 뭐라고 하지 않겠다 그런데 딱 하나만 약속하자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목장 가는 거 네가 이거만 딱 약속하면 아빠가 네가 뭘 하든 아무 터치도 하지 않겠다라고 하신 거예요
마을지기님도 아들의 구원을 위해 뜻을 정한 단호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들도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참 고맙죠
어떤 분은 이 교회 가자 이 한마디 하는 것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그 한 마디를 못 하고 입을 닫는 것 이것이 뜻을 정한 단호함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구원을 위한 길이죠
예수님은 마을을 다니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너에게 천국이 임할 것이다 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을 좋아하고 반기는 사람만 만났을까요? 예수님을 비아냥거리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만났을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피하여 돌아가지 않으시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가신 겁니다 그러면서 마가는 그 길 위에서 만난 한 사람을 언급해요 그게 누구냐면 40절에 나오죠 한번 읽어 볼까요 40절 시작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이 마을과 마을을 막 옮겨 다니는 그 길을 지나면서 한 나병 환자를 만나세요 이름도 없습니다 이 나병이라는 게 참 너무 잔인한 병이에요 한센병이라고 불리는 나병 몸의 조직이 썩어가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병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얼굴이 일그러져도 그 통증을 못 느끼기에 치료법도 찾기가 어려운 병 근데 몸의 통증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참 너무 힘든 고통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버림받음을 겪어야 되는 상처인 것입니다 나병은 당시 하나님께 저주받은 병이라는 그런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거예요 레위기 율법에 따라서 그들은 마을 밖으로 격리가 되어서 홀로 외로이 살아야 했습니다 누구랑도 교제할 수 없었어요 가끔 예배를 위해서 회당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저 한 구석에 앉아 고개 숙이고 있다가 돌아갈 뿐인 거예요
나병 환자가 당당하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서 예수님 저 좀 고쳐 주세요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마을과 마을 어귀에 그 많은 길들이 있었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그 좋고 넓고 잘 다듬어진 길을 이 사람은 걷지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 어떤 길이었겠어요 사람들이 안 다니는 길 사람들이 안 다니는 길은 뒷골목 같은 길 냄새나고 어떻게 보면 쓰레기 더미가 던져져 있는 그런 길이었겠죠 나병 환자는 그런 길만 다닐 수밖에 없는 외로움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넓고 편한 길만 가셨다면 어떻게 그를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나병 환자가 다니는 그 길 위로 예수님이 걸으신 거예요 영적 나병에 걸린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실 영적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에요 참 이렇게 우리가 보면 이 무딘 분들이 계시잖아요? 무딘 분들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해도 별로 이렇게 크게 본인은 잘 모르는 더 나아가서 무감각한 분들이라고 한다면 죄를 지어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고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본인이 중독인데 중독인지도 모르고 이 나병이 너무 그렇게 영적 나병에 걸리신 우리 다 모두 그런 모습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그냥 피해 가고 싶잖아요? 마주치고 싶지 않고 그냥 외롭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고 싶은 것이 사실 우리의 마음일 겁니다? 실패와 버림받음과 온갖 더러움과 아픔과 이 상처의 길 위에서 걷고 앉고 주저앉기를 반복한 그 나병 환자를 주님 보시기 위해서 그 길 위를 걸어 다니신 것입니다
우리들 교회 청년들이 매년 이제 세워 보니까 한 130 커플 이상씩 결혼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들 교회 청년들이 외부의 웨딩홀에서도 많이 결혼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 본당이나 탄설홀에서 꼭 결혼하기를 사모하여서 결혼의 예약이 금세 마무리가 되는 거예요 2027년을 오픈했는데 막 마무리가 되는 거예요 왜 그렇게 교회에서 또 예배하기를 사모할까요? 그것은 그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결혼 예배가 되기 위함 때문입니다 제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결혼 예배 영상을 한번 좀 보여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보여 주세요
이 청년부가 3,500명인가 이 밑에 취학 취학이 얼마나 많겠어요 걔네들이 아이를 일곱 명씩 낳는데 결론이 영혼 구원이고 결혼의 결론도 영혼 구원이 돼서 저는 이제 결혼식을 해도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오늘 한 분이라도 예수 믿지 않는 분 오셔서 예수 믿으라고 이렇게 긴 설교를 해 이게 무슨 주례사예요 설교지? 큐티 하고 왔지? 그래서 그 큐티도 하고 오늘 이제 또 적용도 하고 뒤로 돌아 네 우리들 교회는 매일 이제 큐티를 하는데요 오늘 본문 말씀이 이제 번성케 하리라라는 말씀을 많이 주셨어요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다툼을 보면서 나는 결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들 교회 와서 이제 청년들이 믿음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을 많이 낳고 이 아이들이 또 믿음을 가지고 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양육을 잘 해야겠다
- 저희에게 특별한 또 사명이 있다고 여겨져서 영적인 자녀뿐 아니라 육적인 자녀도 잘 낳아서 정말 하늘나라의 백성을 많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나는 남편에게 복종의 언어를 쓰겠습니다 아멘
아버님이 그래도 우리 세진이가 찾아가서 이 결혼식을 위해서 교회를 네 번이나 오셨다는 거예요 박수 예 예 아우 너무 감사하고요 그리고 이제 앞으로 꼭 교회를 좀 이제 나오셔야 되겠죠 네 아버님 이렇게 박수로 참 이렇게 이혼한 가정의 아들로서 평생 결혼을 안 하겠다라는 생각을 가질 만큼 나병 환자 같은 아버지에 대한 그런 피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 그런데 진짜 영혼 구원을 위한 결혼 예배를 위해 찾아가고 모셔오고 제가 아버님이 이렇게 약속을 하셨는데 교회 오고 계시냐고 물어봤어요 우리 형제한테 그랬더니 이 지방에 이제 계신데 아버님이 그 지방에 계신 우리 목자님들 우리 뭐 성도님들이 찾아가고 연락하고 하는데 아직은 교회를 오시지 않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이 또 시간을 내서 아버님을 모시고 이제 광주 채플로 가서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 이렇게 또 얘기를 하더라고요 피하고 싶은 나병 환자가 아니고 내가 그 길 위에서 걷겠다는 이 적용을 하는 우리 청년들이 있다는 것 너무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 적용 질문 드릴게요 구원을 위한 단호함을 가져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원칙을 지키려고 또 거절해야 될 일은 또 무엇입니까?내가 전해야 할 그 한 사람은 누구이십니까?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첫 번째 뭐라 그랬어요 기도 속에 안식을 누리는 삶 두 번째는 그 사람의 길 위를 걸어가는 거
세 번째는 이겁니다 불쌍히 여겨 손을 내미는 삶입니다
자 40절 말씀 우리 다시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성경을 많이 알았던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무시했는데 참 바닥까지 내려간 고난을 당한 이 나병 환자는 주님께 꿇어 엎드리는 축복된 인생이 됩니다 상처가 다 드러나고 아픔이 다 드러나는 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수 있지만 감추어진 사람보다는 훨씬 더 축복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이 드러난 것 때문에 자신의 더러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병 환자가 간구합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얼마나 겸손한 표현입니까 당장 고쳐 주세요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당시에는 병원도 잘 없고 의술도 지금처럼 이렇게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있었겠습니까? 많은 환자들은 자신이 병 고침 받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 왔죠 데 우리도 여기 계신 분들도 아프고 병들고 힘들고 사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잖아요? 여기 있는 분들 중에 안 아픈 분들이 누가 있습니까? 사실 어디라도 다 아프고 없으면 무릎이라도 아파요 그니까 다 아파요 우리의 삶이
그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기 원하는데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간절히 부르짖는데 나병 환자처럼 자신의 더러움을 알고 깨끗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이 천국의 복음이 들려서 자신의 이 더러운 질병보다 자신의 죄가 깨끗하게 되어야 하는 것 그래서 구원받아야 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을 그는 알게 된 것입니다
그의 고백에 예수님이 뭐라고 반응하십니까? 이게 41절이에요 시작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아멘
그가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그의 간절함 때문이 아니에요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나왔기 때문에 목장에 가기 때문에 큐티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깨끗함을 입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얼마나 참 크고 귀한지 우리가 예배 이렇게 오는 것도 귀한 믿음으로 봐 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공로가 아닌데 이렇게 와서 목장 가는 것도 우리의 믿음으로 봐 주시는 은혜가 있는 거예요 참 너무 주님의 은혜가 큽니다
불쌍히 여기다라는 게 긍휼이잖아요 긍휼 영어로 컴패션입니다 컴패션 고통을 함께 느낀다는 거예요 그 아픔은 내장이 끊어지고 뒤틀리는 듯한 큰 아픔을 동반한 슬픔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보면 너무 마음이 슬프신 거예요 불쌍한 것은 그냥 단순히 감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손을 대셨어요 율법이 금한 일을 예수님이 행하시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긍휼은 찾아가서 만져주고 안아주고 실천하는 것까지 가는 것이 우리가 행해야 할 긍휼인 거죠
한 나병 환자는 이름이 기록돼 있지 않아요 세상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아마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는 거죠 그의 이름이 뭔지도 몰라요 관심보다는 무시가 익숙하고 돌봄보다는 거절이 당연하게 여겨져서 굳어져 있는 그의 마음을 주님께서 들여다보신 겁니다 그런데 이름도 없는 그의 이름을 아마 천국에는 기록돼 있지 않을까 생각이 돼요 이것이 오늘도 지금 이곳에 있는 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다 그렇잖아요 우리가 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힘들고 삶이 이렇게 매일매일의 삶이 이렇게 지쳐가는 거 이 세상에 그냥 던져진 존재로서 온갖 짐을 지고 살아가고 마음에는 상처가 있지만 상처인 줄도 모르고 문제가 문제인 줄도 모르고 그것이 뒤범벅이 되어서 그냥 하루하루를 소진하며 살아가는 한 죄인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인 것이에요
이 하나님의 긍휼이 헬라어로는 이렇게 내장이 끊어질 이 고통을 뜻하는 단어인데 히브리어 구약의 히브리어로 보면 이 긍휼이라는 단어가 라함입니다 라함 이 라함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온 단어냐면요 자궁이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도 의미 없게 쓰신 것이 없어요 하나님의 그 모든 생각과 뜻을 담아 놓으셨어요 어머니가 자궁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품고 그 모든 아이를 온몸으로 느끼고 본능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 아이를 길러내는 그것을 하나님이 긍휼이라는 단어로 쓰신 것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죄인 이름도 무엇인지 모를 그 죄인을 마치 어머니가 뱃속에 아기를 품어내듯 하나님이 지금 품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에요
지난주 한 청년과 통화를 했습니다 자매 청년과 통화를 했는데 여러 가지 이제 늘 사건과 이게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 청년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제 들리는 거예요 얼마나 술을 많이 드셨는지 막 꼬부라진 소리로 막 소리를 막 지르시는데 그 소리 때문에 제가 확 화가 난 게 아니라 어떤 말을 하시냐면 전화하고 있는 이 청년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이 딸에 대해서 막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막 계속하시는 거예요 정말 제가 뭐 이렇게 간단한 욕이 아니라 진짜 이거는 와 어떻게 이런 욕을 하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막 엄청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막 저주를 퍼부으시는 거예요 제가 그 얘기를 들으니까 너무 막 화가 나는 거야 화가 나고 야 너 당장 거기서 나와라 집에서 지금 나와라 제 귀를 막 씻고 싶을 정도로, 아빠 상대하지 마라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안에 막 너무 화가 나고 그런 마음이 막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전화를 끊고 제가 막 이런 사람 저런 사람한테 막 이런 얘기를 나눴는데 나 얘기할 때도 제 안에 막 화가 막 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씀을 이렇게 보는데 나병 환자가 참 너무 이게 싫은 거예요 나병 환자가 싫다 어떻게든 안 만나고 싶다 어떻게든 같은 길 위에서 부딪히면 확 돌아가고 싶다 전화도 하고 싶지 않다 나병 환자를 우리 예수님이 어떻게 그렇게 찾아가셨을까? 나는 싫다 나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화가 막 그런 마음이 제 안에 계속 일주일 동안 있는 거예요 또 전화를 해 보니까 이제 좀 지금은 좀 잠잠하시다고 괜찮다고 이런 얘기를 또 들었는데 제가 이거를 이제 하면서 여러 가지 마음에 들었는데
오늘 1부 예배를 이제 드리고 나가시면서 성도님들이 인사를 막 하시는데 어떤 성도님이 저한테 딱 보시면서 목사님 목사님의 더러움은 뭐예요? 물어보시더라고 목사님의 더러움은 뭐예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참 여기 딱 여기 이제 와서 탁 앉았는데 마음이 너무 막 무거운 거예요 제 마음에 그래서 제 안에 이런 마음이 이제 들었어요 아 나도 나병 환자였는데 나도 나병 환자였는데 저도 어릴 때부터 이게 아토피를 심하게 앓으면서 내가 저주받은 인생이다 나는 버림받은 인생이다라고 20년 동안 예배당에 와도 저 한켠에 앉았다가 그냥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도 나병 환자였는데
그리고 우리들 교회를 제가 10년 전에 왔을 때 어떻게 왔겠습니까? 제가 목장에 갔는데 어떤 집사님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우리들 교회 어떻게 왔어요 물어보더라고요 아 면접 보고 왔지요 이랬어요 그럼 면접 보고 어떻게 오셨냐고 막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그때 어떻게 왔는지 제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좀 부끄럽더라고요
솔직하게 제가 그 면접 볼 때 이렇게 면접을 보고 이제 목사님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사님 혹시 죄 지은 거 있으면 하나 나눠 주세요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아마 사역자의 면접이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신 거 같아요 내가 뭘 죄 뭐 얘기해야 되지 뭐 거짓말했어 이거 얘기할 순 없잖아요 근데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 제가 목사인데 제가 목사지만 제가 야동을 못 끊고 볼 때가 있습니다 봅니다 목사님이 너무 기뻐하시면서 어떻게 그런 걸 나눌 수 있냐고 제가 나중에 교회 이제 합격 전화를 받고 딱 왔을 때 내가 면접을 참 잘 봤구나 야 이렇게 하고 있는데 제가 뽑힌 이유가 그거 야동 봤다고 얘기해서 뽑혔다는 거예요 저 그 얘기 듣는 것도 너무 수치스럽더라고요 와 근데 그 얘기를 이제 목장에서 집사님이 자꾸 물어보시는 거야 어떻게 왔어요 면접 보고 왔어요 어떻게 왔어요 지원해서 왔어요 어떻게 왔냐고요 보니까 제가 이 얘기를 이제 솔직하게 오픈을 집사님 사실은 이렇게 물어보셔서 제가 이렇게 목사이지만 너무 부끄러운데 제가 이렇게 야동을 봅니다 이것 때문에 이렇게 뽑아 주셔서 왔어요 너무 부끄러워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는데 그 집사님이 뭐라고 얘기하셨냐면
목사님 저는 많은 목사님들을 보면서 참 목사님의 위선으로 사실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나눠 주시니까 제가 너무 위로를 받습니다 목사님 감사해요 이렇게 나눔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나병 환자였어요 저도 우리들 공동체 담임 목사님이 이렇게 나눠 주는 것을 받아 주시고 들어 주시지 않았으면 저도 사실은 이 말씀이 들리는 공동체에 올 수 없었던 사실 그 길 위에서 주저앉고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나병 환자였어요
근데 그걸 잊어버리고 그걸 잃어버리고 그냥 나병 환자가 싫다는 마음이 제 안에 막 일어나는 게 여기 기도하면 생각이 나더라고요 주님 저도 나병 환자였는데 나병 환자가 싫다고 제가 다 이렇게 화가 나고 주님 용서해 주세요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다 나병 환자로 이곳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 그런 삶이었지만 목장에서 우리를 받아줬어요 그리고 우리가 안식을 누렸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죄를 깨닫게 되는 은혜를 입고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또 하나의 또 한 명의 나병 환자를 두고 계시는 거예요 그 위를 함께 걸어가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거절을 이 초청을 여러분 거절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그 위를 함께 걸어가자고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청년 헌신 예배로 예배를 드리는데 왜 청년 헌신 예배 때 이 말씀을 주셨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우리 청년들이 참 안식이 필요할 때이죠 인생이 지치고 매인 삶이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과의 기도 속에서 안식을 찾아야 하고 정말로 나병 환자 같은 우리 청년들 또 나병 환자 같은 그 가족들 그 한 사람을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또 그 한 사람을 위해 그 길을 걷는 것 무시하고 외면하고 싶은 그 한 사람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며 손을 한번 내밀 수 있는 적용을 하는 청년들 이것을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라고 이 말씀을 주시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 나병 환자가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서는 절대로 네가 나음 받았다는 것을 소문내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너의 몸을 보이면서 입증을 받고 깨끗함을 받았다는 입증을 받고 공동체로 돌아가라는 것을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는 가서 그냥 기쁜 나머지 어떤 마음인지 다 그냥 소문을 내고 다니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본인이 십자가를 지셔야 되는 사명 때문에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이렇게 병 고침이 다인 줄 알고 드러나면 안 되니까 예수님이 오히려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적한 곳으로 지내실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나병 환자로 은혜를 받았잖아요 저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아도 이렇게 순종하지 않는 게 또 있더라고요 이렇게 내 욕심을 부리는 게 있더라고요 또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우리 예수님을 한적한 곳으로 또 내모는 그런 그런 또 악을 저지르고 있는 게 있더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나병 환자입니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한적한 곳으로 내모는 인생이 아니라 그 한 가지를 꼭 순종하여서 그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모셔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고 우리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적용 질문 하나 보여 주십시오
내 원함을 내려놓고 주님의 원함을 구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깨끗함을 받기 위해 드러나야 할 나의 악함과 죄악은 무엇입니까? 불쌍히 여김 받기를 원하는 것은 또 손대는 적용을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안식이 필요하시죠 이리저리 안식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찾아다니지만 오늘 예수님이 기도 가운데 안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기도 가운데 내 죄를 깨닫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그 기도 가운데 오라고 하십니다 그 한 사람 아무도 찾지 않는 그 길을 걷는 그 한 사람을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한 사람의 길 위를 함께 걷자고 하십니다 불쌍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불쌍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손 내밀자고 하십니다 우리도 손 내밀어 주심을 받았습니다 주여 그런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라고 이제 우리 주님 한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된 안식이 주님을 만나는 기도 속에 있는데 이리저리 안식을 찾으려고 세상을 헤매고 있는 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환호를 받으며 박수 받는 것이 나에게 안식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헛된 걸음을 하는 것을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셔서 또 여러 가지 사건으로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서 나중에 예수님의 기도가 생각났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 기도의 자리에 앉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큐티하시는 담임 목사님을 이렇게 늘 보고 있지만 우리도 늘 큐티하는 그 속에서 안식을 찾고 목장 가는 것에서 안식을 찾는 것이 우리는 늘 생각이 나고 그것을 따라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운데 보여 주신 그것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잘 따라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오늘도 너무나도 힘든 마음으로 육체도 아프고 마음도 힘들고 괴로워서 이 시간 그런 마음으로 주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주님 앞에 나온 사람을 하나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피곤하시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기도하시고 안아 주시고 하나님 그렇게 치유해 주셨던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주님 오늘 만나 주시고 주여라고 부르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님 찾아가 주셔서 주님과의 만남 속에 안식이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오늘도 우리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신 줄로 압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잘나가면 찾아오지만 우리 주님은 내가 망하고 너무 괴로워서 주님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주님 아버지 주님이 찾아오신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주시옵시고 그 나병 환자를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아닌 그 사람의 위를 길을 인생을 걸어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아멘 오직 복음을 위해 여러 곳을 다니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복음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불쌍히 여김을 받고 불쌍히 여기는 우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아버지 육체가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여러 가지 삶이 곤란한 분들이 주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안수해 주셨듯 예수의 피 묻은 손으로 안수해 주시옵소서 나음을 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귀신이 떠나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떠나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나음을 입을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고쳐주시옵소서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종 중독이 끊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종 죄가 끊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어제 우리 큐패를 하는데 어떤 아이가 담배를 끊었는데 담배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고 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주여 끊지 못하는 죄가 우리 가운데 있는데 주여 다 끊어지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깨끗하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나라가 나병에 걸렸습니다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무엇이 죄인 줄도 모르고 만상 낙태법을 그것이 통과하면 그것이 잘되는 길인 줄 알고 영적 나병에 걸린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모든 악법을 막아 주시옵시고 태아생명 보호법이 제정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담임 목사님의 모든 영육과 사역과 결정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빈손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주님께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나눌 것만 인생 있는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모든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목장과 직장과 학업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아멘 감사를 드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동영상 URL: http://www.youtube.com/watch?v=ZeO2PrWYw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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