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11월 02일 주일설교]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사도행전 21:15-26) - 김현우 목사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님의 블로그 2025. 11. 3. 01:18

 

[사도행전 21장 설교 요약] '기꺼이 영접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통해, '기다림'과 '적용', 그리고 '손해 보는 섬김'의 진짜 의미를 우리들교회 김현우 목사님의 설교와 간증으로 만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쌀쌀한 11월, 오늘은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이라는 따뜻한 제목의 말씀으로 찾아왔습니다. 바로 우리들교회 김현우 목사님의 사도행전 21장 15-26절 설교 말씀인데요.

여러분은 '영접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보통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 순서가 반대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미 우리를 '영접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요.

하나님이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기꺼이 받아주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기꺼이 영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정을 통해 그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

 

 

1.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기 위한 기다림 ⏳

첫째, 기꺼이 영접하는 삶은 '여러 날을 기다려 주며 함께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바울이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라고 말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바울은 지금까지 유두고가 3층에서 떨어질 정도로 밤새 설교를 하며 급하게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여러 날'을 지체합니다.

이유가 있었어요. 바로 직전(어제 본문)에 선지자 아가보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자, 함께하던 동료들이 울면서 바울을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여러 날' 동안 "우리 인생 사명 따라왔다가 사명 따라가는 거다, 울지 말라"며 그들을 '양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15절의 주어는 '바울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원어 성경에는) '우리'가 여장을 꾸려 올라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명의 길은 혼자 갈 수 없기에, '우리'가 되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던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 자녀,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이 '여러 날'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 기다림의 간증 (김현우 목사)
김현우 목사님은 자신의 아내가 바로 이 '여러 날'을 기다려준 사람이라고 간증합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큐티인으로 묵상을 했지만, 당시 신학생이었던 김 목사님은 "나는 헬라어로 큐티한다"며 교만하게 큐티인을 거절했다고 해요. 아내는 그런 남편을 비난하지 않고, '여러 해' 동안 묵묵히 아침마다 식탁에서 큐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다렸습니다.

결국 김 목사님이 결혼 후 '육아 우울증'이라는 겸손한 환경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큐티인을 찾아 묵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우리들교회로 인도함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2. '말'이 아닌 '손과 발'로 하는 손해 보는 적용 🤲

둘째, 기꺼이 영접하는 삶은 '손과 발이 가며 손해 보는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이 그들을 '기꺼이 영접'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바울은 야고보와 모든 장로에게 선교 보고를 합니다. 이때 바울은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보고합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분명히 한 것이죠.

보고를 들은 장로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한 가지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수만 명의 유대인 신자들'이 바울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할례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 오해는 너무 깊어서 말로 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역 감정이나 진영 논리처럼요. 그래서 장로들은 바울에게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처방을 내립니다.

"서원한 네 사람이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23-24절 요약)

한마디로, "당신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손과 발'의 수고로 직접 보여주고, 심지어 그 네 사람의 비용까지 내는 '손해 보는 적용'을 하라"는 것입니다. 서로를 기꺼이 영접하는 유일한 길은 이처럼 '손해 보는 적용'을 하는 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 말로만 하는 섬김, 생색내는 섬김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하면서도 은근히 '내가 했다'는 생색을 낼 때가 많습니다. 김 목사님은 "주차 봉사를 하고 로비 화장실에 들어가면 '은혜를 아는 만큼 생색이 없어진다'는 문구에 회개한다"고 고백합니다. 진정한 섬김은 말이 아니라, 손과 발이 가고 내 돈이 나가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3. 가장 큰 기적: '나의 죄'를 항상 보는 것 ✝️

마지막으로, 기꺼이 영접하는 삶은 '나의 죄를 항상 보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바울은 장로들의 이 무리해 보이는 처방에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고 '이튿날' 바로 순종합니다. 여기서 주어는 '우리'가 아니라 '바울'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비량 선교를 하던 사람이었지만, 이 네 사람의 비용까지 혼자 다 감당하며 십자가를 짊어집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바울에게 예루살렘은 '자신의 가장 큰 죄'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자신이 증인으로 서 있었던 끔찍한 죄의 현장이죠.

이처럼 '내 죄가 확실하게 보이는 사람'은 생색 없이 섬길 수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자신에게도 그런 '예루살렘'이 바로 '어머니'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유부남이었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혼외자였고, 아버지 없이 자라며 그 모든 분노를 어머니에게 '지랄 총량'으로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된 후에도 10분 거리에 사는 어머니를 명절 외에는 찾아가지 않았다고 해요.

✨ 기적의 적용: 양주에서 광주까지
그러던 그가 최근, 촬영 때문에 경기도 양주에 가 있을 때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본 적도 없는 '오촌 누님'이 돌아가셨으니, 같은 경기도인 '광주' 장례식장에 다녀오라는 것이었죠. 내비를 찍어보니 70km였고 그날은 하필 목장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손수건과 앞치마(지난주 설교)'의 적용으로 그 길을 순종했습니다. 두 시간이 넘게 운전해 돌아오는 동안, 어머니의 무심한 말에도 '생색'이 올라오지 않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내 죄'가 보이니 할 수 있었던 적용이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내 죄가 보여서 구원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삶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이자 표적입니다. 11월 전도 축제를 앞두고, 먼저 나를 영접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나도 가족과 이웃을 '기꺼이 영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

핵심 요약: 기꺼이 영접하는 3가지 길

✨ 1. 기다림: '나'에서 '우리'가 되기까지 (구원을 위해 '여러 날' 인내하기)
📊 2. 손해 보기: '말'이 아닌 '손과 발'로 적용 (오해를 풀기 위해 비용(돈) 내기)
🧮 3. 죄 보기:
가장 큰 기적 = '내 죄'가 보이는 것 (예루살렘 = 내 죄패)
👩‍💻 결론: 하나님이 나를 먼저 영접하셨기에 나도 남을 영접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

Q: 바울은 왜 예루살렘에 가기 전 '여러 날'을 기다렸나요?
A: 바울이 결박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동료들이 울며 말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명의 길을 혼자 갈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이 '함께' 갈 수 있도록 '우리'가 되기까지 기다리며 양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Q: '제자'와 '형제'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설교에서는 의도를 가지고 구분했습니다. '제자'는 고난이 예정된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는' 동료를 의미하고(16절), '형제'는 사명의 자리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기꺼이 영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17절).
Q: 바울은 왜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돈(비용)까지 내야 했나요?
A: 수만 명의 유대인 신자들이 가진 오해는 매우 깊어서 '말'만으로는 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바울에게 직접 율법을 지키는 '행동'을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비용'까지 내는 '손해 보는 적용'을 처방한 것입니다.
Q: 바울이 장로들의 처방에 바로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바울에게 예루살렘은 자신이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가장 큰 죄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가 확실하게 보이는 사람은(죄패가 확실한 사람) 따지지 않고 생색 없이 순종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Q: 설교자가 말하는 '가장 큰 기적'은 무엇인가요?
A: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내 죄가 보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죄가 보여야만 비로소 구원을 위한 진정한 적용과 순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