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마가복음 15:12-20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우리가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십자가 지시는 여정을 이렇게 함께 걸어가는 것 같아요 더욱 이번에 이제 팔복산 기도회를 하고 있잖아요 팔복산 기도회를 가려고 저는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씻고 교회를 가고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너무 좋은 거 같아요 그냥 아침을 이렇게 예배를 하러 나오고 기도를 하러 나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은 거 같습니다 대신에 눈이 잘 안 떠져요 지금도 눈을 부릅뜨려고 해도 눈이 잘 이게 육신이 약해 가지고 이렇게 하루 종일 진짜 열심히 사역했다 이제 들어갈까? 보면 시계가 오전 11시예요 하루가 너무 길어요
특별히 이번에 팔복산 기도회가 좀 더 특별한 거는 이 목사님께서 이제 성지순례 다녀오셔서 이렇게 고난 주간 하루하루에 그 메시지를 담아 오셨잖아요 그래서 정말 그 예수님께서 지시는 십자가의 길이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더욱이 이 고난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우리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에게 뭔가 좋은 모델로 있는 사람의 잘된 것을 따라하고 싶지 누가 이 고난의 길을 따라가겠다고 따르겠다고 자처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거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왕으로 오셨어요 그런데 동시에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빌라도 앞에 예수님을 끌어다 놓고 처벌을 외치는 본문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의 제목은 '유대인의 왕이여'입니다 유대인들이 원했던 왕의 모습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자신들이 생각한 왕의 모습이 예수님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예수님은 그들이 따라야 될 왕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 예수님을 붙들어야 될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이 세상의 왕과 진정한 왕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왕의 모습은 어떤 것이고 또 우리가 진정으로 따라야 될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함께 좀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이 세상의 왕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12절에 보니까 빌라도가 이르되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라고 해요
빌라도는 여러분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너무나도 시기해서 넘겨 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물어요 알면서 왜 계속 물어볼까요? 여러분 우리가 진리를 몰라서 결정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계속 묻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서 잘 물어야 묻는 게 실력이다라는 이야기하죠 그죠? 잘 물어야죠? 모르는 일이 있으면 물어야 돼요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 보세요 진짜 물어야 될 것들 말고 내가 알면서도 내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서 물을 때가 있어요 목장에서 막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 어떤 정말 이렇게 내가 결정해야 될 일이든지 아니면 나의 연약함이든지 수치에 대한 이야기든지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누군가가 합니다 목자님이 하실 수도 있고 다른 목원 집사님들이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면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음 주에 또 얘기해요 또 물어요 그게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그 답이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목장 바꿔 주세요 그래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알 거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그 뜻대로 결정을 하면 뭔가 내가 손해를 볼 거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늘 사람들에게 묻고 분위기를 살피고 상황을 핑계 대면서 물으려고 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오늘 빌라도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빌라도는 총독입니다 결정을 내려야 되는 사람이에요 근데 지금 계속 결정을 못 하고 있잖아요 계속 군중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군중들의 군중들이 예수님을 사형하라고 지금 빌라도 앞에 데리고 온 사람들이에요 근데 왜 계속 군중들한테 물어보겠습니까? 이 총독이라는 권세가 있어요 그런데 그 권세를 가지고 결정할 기준이 없는 거예요 판단하는 자리에는 가 있는데 진리 앞에 서 있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을 못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자세히 생각해 보면 큐티 열심히 하고 말씀 듣다 보면은 어느 길이 옳은지 사실은 우리가 알아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실지 알아요 항상 하나님께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반대로 이야기하신다는 거 알아요 그런더라도 우리는 어때요? 정말 이게 맞을까? 아니 조금 더 봐야 되지 않을까? 끊임없이 사람들한테 묻고 상황을 살핍니다
진짜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될 십자가를 지기 싫어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알면서도 자꾸 묻는 것은 겸손이 아니에요 그건 회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도 결단하지 못하는 빌라도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회중들한테 군중들한테 물으니까 13절에 뭐라고 합니까?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불과 며칠 전에는 호산나 종려나무 가지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영했던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을 따르는 것 같다가도 내 기대가 무너지고 내 예상과 다르고 내 생각과 다르면 언제든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을 때는 너무 환영하는 거예요 병 고쳐 주시고 귀신 쫓아내 주시고 오병이어 기적 일으키시고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면서 막 환호를 해요 주님 나도 이거 좀 해 주세요 주님 나의 문제도 좀 해결해 주세요 그러면서 주님을 열렬히 환호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면 우리는 금세 등을 돌리는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 자체가 자기를 부인하는 거잖아요? 자기 부인의 결정판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싫을까요?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려는 삶을 사는 게 아니고 아니라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이 세속사와 구속사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구속사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하셨잖아요 이 말이 뭡니까? 나를 부인하는 거예요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나를 부인하는 거예요
그런데 세속사는 뭐예요? 내가 그보다 옳도다예요 나를 증명하는 거예요 내가 인정받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한테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 등을 돌리고 마는 거예요
오늘 바로 이 회중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내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면요 말씀으로 날마다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그래서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결국 우린 누구를 부인하게 돼 있어요 예수님을 부인하게 돼 있어요
근데 오늘 이 군중들의 모습을 보면은 돌변해도 이렇게 돌변하는 게 이상해요 어떻게 합니까?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해요 단순히 죽여라 죽여라 이게 아니에요 여러분 십자가는 당시에 가장 치욕스럽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데도 오늘 가장 모욕적인 형벌을 내리라고 이 군중들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야망이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조금만 수가 틀리면 조금만 뭐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냥 죽여라 죽여라를 떠나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14절에 보면 빌라도가 기가 막혀요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빌라도도 지금 예수님한테서 죄를 못 찾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악한 일을 했냐고 묻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회중들이 예수님이 이런 이런 악한 일을 했습니다 저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 죄인이에요 이렇게 뭐 이렇게 좀 논리적으로 답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오늘 뭐라고 합니까? 뒤에 이어서 더욱 소리 지르되라고 해요 대답을 안 하고 무리도 대답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유가 뭔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더 크게 소리만 지릅니다
여러분 말씀이 없는 사람은 논리가 없어요 아무리 세상에 있는 갖은 논리를 다 갖다가 갖다 붙인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논리는 시작부터 오류라는 거예요 말씀을 뭐 논리적으로 뭐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교만한 거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 땅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가 되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신 게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그래요 이해하려 그래요 그런데 그것부터가 이미 오류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말씀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어 주시는 이 구속사의 음성으로 들려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죄가 드러났을 때 회개하는 대신에 오늘 어떻게 해요? 더 크게 소리 지르는 거예요 목소리가 더 큰 거예요
여러분 저도 제 아내랑 싸울 때 보면은 제 아내가 다 맞는 말을 해요 맞는 말을 해서 기분이 나빠요 저가 하다 보면은 막 논리로 내가 막 지는 거 같잖아요 그럼 저도 모르게 소리가 높아져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제가 했던 말들을 복기를 해 보잖아요 너무 유치해요 막 그냥 그거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내가 이딴 소리를 했다고 분한 마음은 있는데 논리가 없는 거예요 목소리만 더 커지는 겁니다
우리도 늘 보면은 말씀 앞에서 내가 죄인인 것을 알아야 옳지 않은 건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 앞에 늘 정직하게 서는 거보다는 감정으로 밀어붙이고 또는 목소리를 높이고 억지를 부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빌라도 지금 아니 무슨 악한 일을 행했냐? 그러면 답을 좀 제대로 해 봐라 이 사람들을 설득을 하거나 그런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오늘 15절에 보면은 기가 막힌 표현이 나와요 뭐라고 합니까?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아까도 얘기했지만 빌라도는 총독이에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붙들지 않기 때문에 오늘 결국에 이 빌라도가 하는 선택의 동기는 뭐예요?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유대인들이 바랐던 왕의 모습은 바로 이겁니다 내 만족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던 거예요 오늘 세상 왕의 모습이 바로 이 빌라도 총독의 모습에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 세상 왕은 어떻게 한다고요? 만족을 주고자 하여 여러분 이 땅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려고 일을 합니까? 물론 그게 뭐 잘못된 일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구원의 문제 앞에서 결국에는 내가 말씀의 책망을 듣지 못하고 말씀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늘 그 사람의 만족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요 나의 만족에만 혈안이 돼 있는 거예요 나의 구원보다 나의 만족이 더 우선인 거예요 우리 역시도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고자 또 내가 만족을 얻고자 예수님을 죽이고 구원과 상관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가족에게 만족을 주려고 교회 가자는 말을 못 해요 내 가족의 이 화평이 깨지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이 구원의 말을 못 합니다 상사에게 만족을 주려고 술 못 마신다라는 말을 못 해요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우리는 얼마나 하루에도 수십 번 타협을 하는지 모릅니다 진실을 말해야 되는데 침묵하고 신앙을 지켜야 되는데 타협하고 구원을 위해 말해야 되는데 분위기 맞추고 십자가를 져야 되는데 사람의 비위만 맞추는 거예요
결국 그렇게 사람의 만족을 위해서 이 빌라도가 했던 결정이 뭡니까?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넘겨 주는 거예요
죄인은 풀어주고 의인은 넘겨 주는 아주 기가 막힌 결정을 하게 된 겁니다 이것이 바로 눈치 보는 삶의 결론이에요 눈치를 보면 가치가 전도되어 버리거든요 구원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해지는 거예요 진리보다 관계가 더 중요해지는 거예요 예수님보다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겁니다 이것이 2천 년 역사상 인류의 역사상 가장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요즘 우리가 계속 사도신경 우리도 매주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하지만 그때도 뭐라고 돼 있습니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이 본디오 빌라도가 박제되어 있어요 최악의 결정을 한 사람으로 잠깐은 영화로웠을지 모릅니다 잠깐은 유대인들의 칭송을 받았을지 몰라요 그런데 빌라도뿐만 아니라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 피의 책임이 남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결정도 마찬가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하나의 결정이 우리의 후손에게 피가 될지 생명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원래 이 십자가는 누가 져야 될 거였습니까? 바라바가 져야 될 십자가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가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구조라고 하셨어요 내가 받아야 될 심판을 예수님이 받으시고 내가 맞아야 될 채찍을 예수님이 맞으시고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 여러분 이건 단순히 빌라도의 비겁함만을 보여 주기 위해서 기록한 게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바라바 같은 사람인지 결국 내가 살아난 것은 나 대신 예수님이 넘겨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 마가는 의도하면서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여러분들 사람들의 눈치와 내 손해 때문에 결단을 미루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의 유익이 흔들릴 때 예수님 편에 서고 있습니까? 아니면 군중처럼 쉽게 돌아섭니까?
저 태어나 보니까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고 계셨어요 이렇게 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그러니까 저는 이제 태어나면서부터 모태 신앙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뭐 어렸을 때부터 교회 뜰 안에서 계속 자라왔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교회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저희 아버지는 세상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사실 교회에 대한 상처가 있으시고
그러니까 저는 이제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교회 가면은 왜 계속 교회가 있냐라고 얘기하는 거 같고 뭐 학교 제가 뭐 이렇게 너무 기분 좋게 가진 않았지만 또 교회 안 가는 것 때문에 뭐라 하는 거 같고 그랬어요
아버지가 그 하여튼 저희 아버지가 공부를 되게 잘하셨대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제가 어디 뭐 이렇게 학교 가서 좀 떼보고 싶은데 그럴 순 없는데 근데 저희 아버지는 이렇게 그런 게 늘 있으신 거예요 나는 이런 힘든 상황에서 어 그 가정 불우한 가정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해서 이렇게 자수성가했다 그런 거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신 거 같아요 근데 저희 아버지가 그렇게 자수성가를 하신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자수성가한 사람인 거 아세요? 자기가 그 모든 역경을 뭐 이렇게 뚫고 해냈잖아요 그러면 이게 나 내가 그 법이 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저희 아버지 기준이 엄청 높은 거예요
저희 아버지 입장에서는 너는 내가 어 돈 벌어서 학원도 보내 줘 어 먹여 줘 학교도 잘 보내 줘 학원을 몇 개를 보내냐 그러는데 저희 아버지 늘 저한테 했던 말이 그 말이에요 너는 왜 인풋은 있는데 아웃풋이 없냐? 뭐 들어가는 건 많은데 나오는 게 없냐? 그러니까 저는요 저희 아버지를 처음에는 되게 제 인생의 목적 중 하나는 저희 아버지를 만족시키는 거였어요
내가 이렇게 공부를 하면 열심히 영어를 배우면 어 우리 아버지가 좀 만족하겠지? 근데 저희 아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봤을 때는 뭐 저희 아버지도 요즘에 가끔씩 제 유튜브 설교를 보셔서 제가 말을 하기가 참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제가 그렇게 느낀 거를 그죠 늘 아버지한테는 저는 부족한 사람인 거예요 부족한 아들인 거예요 근데 저는 그게 늘 저한테는 눌리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제가 하게 되는 게 결국에는 저희 아버지 눈치를 보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아버지가 좋아할까 저렇게 하면 아버지가 날 좀 인정해 줄까? 근데 저는 아버지한테 칭찬을 들어봤던 경험이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아버지한테 인정을 못 받으니깐요 제가 나중에는 결국 삐뚤어졌어요 아니 내가 이렇게 애를 쓰는데도 아버지가 나한테 인정을 안 해 주네 어 나를 만족을 못 하네 그럼 내가 이렇게 노력할 이유가 뭐가 있나? 아버지가 원하는 거 무조건 반대로 해야겠다 청개구리병이 걸렸어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저 많이 맞았거든요 그러니까 근데 저희 아버지도 내가 언제 널 그렇게 때렸냐? 근데 근데 여러분 때린 사람은 기억 못 해도 맞은 사람은 기억하잖아요? 그 뭐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맞을 짓을 했어요 공부도 안 했죠 뭐 맨날 오토바이 타고 다니죠 그러니까 뭐 이거 안 때리는 게 이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러면서도 저는 제가 이렇게 삐뚤어진 게 저희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나를 조금만 인정해 줬다면 날 조금만 그 칭찬해 줬다면 나한테 좀 만족함을 표현을 해 줬다면 내가 이러진 않았을 텐데 막 혼자서 그런 생각을 막 했어요
근데 결국에는 그게 뭐 뭐였을까? 지금 와서 생각을 해 보니까 결국에는 저한테도 이 나를 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왕이 필요했던 거예요 이 아버지를 저는 왕처럼 생각했던 거 같아요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제가 좀 그게 깨달아졌어요
저희 아버지 참 무섭거든요 두려워요 근데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하셨습니다 왜 무섭고 두려운 줄 아냐? 부러워서 그렇다 전 저희 아버지가 부러운 거예요 그 모든 것을 힘든 것을 막 통과하시면서 뭐 이루시는 게 있다는 게 보면서 막 부러운 거예요 근데 나는 그게 안 되니까 두려운 거예요
그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는 게 뭐 사실 대단한 건가요? 사실 뭐 지금 뭐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뭐 제 자존감은 좀 올라갔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자존감 높아졌으면 결국에는 또 그 자존감 때문에 예수님 제대로 안 믿었을 것 같아요
여러분 결국에는 하나가 열 가지인 게요 제가 사역을 하면서도 사실 목사는 구원 때문에 사역을 해야 되는데 뭐 저도 여러 번 간증을 해서 아시겠지만 저는 사실 인정받는 게 제 사역의 목적이었어요 우리들 교회를 처음 오게 된 것도 우리들 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다 큰 교회다라는 소문을 듣고 왔어요 그러면 이 교회에서 잘 배워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온 게 아니고 저는 우리들 교회 가서 사역하면 나도 인정받겠다 칭찬받겠다 그런 마음으로 왔어요 너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러니깐요 결국에는 구원 때문에 사역을 하려면 자기 부인을 해야 되는데 저는 그 부인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인정받고 싶으니까 뭔가 계속 증명하고 싶으니까 저는 그 십자가를 못 지는 거예요 그 못 지고 못 지고 못 지다가 결국에는 제가 교회를 떠났잖아요 우리들 교회를 뛰쳐 나갔어요
저는 그게 오늘 호산나 호산나 외치다가 정말 돌변해 가지고 예수님 십자가 못 박으라고 하는 군중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역을 해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은요 내가 교회에서 봉사를 해도 섬김을 해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은요 결국에는 조금만 일이 힘든 일이 찾아오면 다 그만두고 싶어 해요 제가 그랬어요 왜냐하면 사역의 목적이 자기 부인이 아니고 자기 만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늘 내 만족을 위해서 사역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내 생각대로 안 되면 뭐가 내 뜻대로 안 되면은 다 그만두고 싶은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해서 뭐 하나 누구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런 말이 전자동으로 나왔어요 그런 것이 해결이 안 되고 또 안 되고 또 안 되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 때문에 제가 공황장애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결국은요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모든 것의 목적 모든 곳에 이 하나로 관통하는 것은 결국은 자기 부인과 자기 만족이에요 오늘 군중들은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빌라도 역시 자기가 누군가를 만족시켜 줘야 될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예수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럼 세상의 왕은 그렇게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의 만족을 위해서 일한다고 한다면 진정한 왕은 참된 왕은 어떤 왕일까요?
두 번째로 참된 왕은 조롱과 수치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왕입니다
16절에 보면은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았다고 해요 군인들이 예수님 한 사람 끌고 들어가는데 온 군대를 모았다고 해요
십자가는 결코 조용히 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일이 일어날수록 방해도 커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도 이 군대가 집결해요 조롱과 폭력과 희롱이 총동원되는 거예요 내가 진짜로 구원의 길을 가려고 한다면 갑자기 모든 것이 몰려오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양육이 시작이 되면 갑자기 없던 고난이 오는 분들이 있다 그러시잖아요? 그죠? 뭔가 영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생각지도 못한 세상의 일들이 빵빵 터집니다 어떤 한 분은 팔복산 기도회가 그렇게 두려우시대요 왜 두려우실까요? 지금까지 팔복산 기도회 몇 번 했는데 항상 팔복산 기도회 끝나자마자 사건이 터졌대요
근데 여러분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십자가 앞에는 늘 방해가 집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이 힘든 것은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가 아니에요 내가 적용을 괜히 했나? 내가 말씀을 괜히 봤나? 막 너무 힘들고 힘들고 힘들다가도 말씀을 볼까? 하면 또 말씀에서 어떤 말씀 할 줄 알기 때문에 아우 정신 차리고 내가 하마터면 큐티할 뻔했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근데 여러분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힘든 사건이 찾아왔다면 이미 구원이 시작된 거예요
17절에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이 군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왕처럼 희롱하려고 자색 옷을 입힙니다 그리고 가시관을 씌워요 그런데 여러분 겉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속으로는 고통스러운 그런 이 가시관과 이 자색 옷을 입으면서 어 예수님께서 어떠셨을까요? 너무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셨을까요? 단지 아프기만 하시지 않으셨을 거예요 전 인격적으로 고통을 받으셨을 겁니다 체면이 상하고 너무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찔리고 근데 예수님께서 이런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거예요
예수님도 가시관 쓰셨잖아요? 여러분 우리도 수치를 당하고 찌름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지셨던 그 쓰셨던 가시관이 헛된 의미가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가 쓰고 있는 그 가시관 우리가 당하고 있는 그 수치와 조롱도 헛된 것이 아니에요 주님께서 보여 주셨잖아요 그렇게 자색 옷 입고 가시관 쓰고 가신 것을 보여 주셨어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그 고통이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까지 보여 주셨어요 가시관은 저주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구원의 도구가 됐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인생의 찌름과 모든 수치와 희롱과 조롱의 사건은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가 않은 거예요 계속해서 예수님의 조롱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18절에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겉으로는 왕을 대우해 주는 말 같아요 하지만 실상은 조롱하는 말이죠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들이 조롱하려고 하는 말이 진실이었어요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시잖아요? 유대인의 왕일 뿐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잖아요? 사람들은 조롱하려고 말했지만 군인들은 조롱하려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입술을 통해서도 이 예수님을 증거하셨어요
19절에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겉으로는 절하지만 속으로는 모욕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세상의 경배예요 근데 예수님은 왜 이런 모욕을 다 받으실까요? 받으실 이유가 하나도 없으실 것 같은데 만약에 여러분들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 막 갑자기 생각 저 오늘 차 타고 운전하면서 오는데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진짜 예수님 너무 힘드셨겠다 너무 자존심 상하고 너무 괴로우시고 야 내가 만약에 그 자리에 내가 예수님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서 혼자서 막 또 이제 이렇게 차 막히니까 심심하니까 혼자서 막 막 시나리오를 써 봤어요 그래서 이렇게 딱 써 봤습니다 야 다 나와 봐 지금 나한테 가시관 씌운 새끼 누구야? 야 자색 옷 네 옷이라고 가져 왔냐? 너 나한테 뭐라 그랬어? 뒤질래? 예수님 십자가 달려 가지고 막 팔 여기 뭐야? 이렇게 못 박히시잖아요 그러면서 막 사람들 밑에서 창 찌르면서 야 네가 예수 유대인의 왕이면 내려와 봐 내려와 봐 저는 저 같으면 딱 십자가에서 내려와 가지고 야 말 조심해 내가 지금 힘이 없어서 이런 줄 아냐? 너 조심 너 조심해 그러면서 다시 올라갈 것 같아요 근데 예수님께서 그러지 않으시는 거예요 그걸 다 묵묵히 받으셨어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왜 그럴까요? 우리 구원 때문에요 우리를 위해서 그래요 우리가 받아야 될 조롱과 수치 대신 짊어지시는 거예요 죄인은 말이 없잖아요 심지어 예수님께서 죄인도 아니신데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기로 결정하시면서 죄인이 스스로 되셨어요 예수님은 단지 몸만 지키신 게 아니고 우리의 수치와 모욕까지 대신 받으시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마지막으로 20절에 보면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희롱을 다 한 후'라는 이 구절에 참 여운이 많이 남더라고요 희롱을 다 한 후 희롱이 끝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우리 수치가 너무 힘들잖아요? 희롱 당하는 게 너무 괴롭잖아요? 내가 고통 당하는 게 나 너무 힘들기만 하잖아요? 이것만 끝나면 이것만 끝나면 이것만 끝나면 근데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떻다고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희롱이 끝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시작돼요 이 모든 희롱을 그냥 당하신 게 아니에요 이 희롱과 수치를 다 당하셔야지만 십자가를 지실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묵묵히 받으신 겁니다 희롱과 억울함이 찾아오면 그 자리에서 끝난 것 같고 망한 것 같지만 주님 안에서는 그게 끝이 아닌 거예요 주님은 다음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게 뭐예요? 십자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뭐예요 부활입니다
희롱 당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그래서 끝이라고 말하면 안 돼요 여러분 수치와 희롱에서 끝나면 결코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고난만 있다고 축복이 되지는 않아요 수치와 희롱을 통해서 말씀이 들리고 십자가를 지는 적용까지 나아가야 되는 거예요 과정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우리의 사명이 되는 거라고 하셨어요 수치와 희롱을 통해서 내가 내 인생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고난이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것은 여러분 어제 목사님께서도 팔복산 기도회 때 이야기하셨지만 고난을 당하는 것은 황홀한 거라고 하셨어요
전 처음에 목사님이 뭐 말을 실수하셨나 고난을 당하는 거는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렇게 생각했 그런 게 아니고 황홀한 거라고 하셨어요
왜 황홀합니까? 여러분 고난을 당한다는 게 황홀하다는 게 말이 돼요 고난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황홀할 수 있는 거예요
왜요?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어 있는 고난이기 때문에 구원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에 그 고난이 황홀한 거예요 희롱을 다 한 후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가 다 한 후 부활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 모든 인생의 여정 여정 가운데 수치와 조롱과 때로는 고통과 아픔과 이 모든 인생의 15 광야들을 통과하면서 이제 그다음 그다음 사명과 사명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우리에게도 부활의 영광이 임하는 거예요
저는 제가 제 인생에서 가장 수치를 겪었던 적이 언젠가 그 저는 사실 별 고난이 없는 사람인데 전 군대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 운전병 출신입니다 그 처음에 운전병을 갔는데 부식차를 운전을 했어요 그 뭐죠? 그 우리 병사들 식사하는 식자재들을 나르는 차로 운전을 했어요 그러면 맨날 새벽에 일찍 나갔다가 그 다 돌아다니면서 부대 돌아다니면서 다 배급하고 이제 와 가지고 이제 청소하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제가 그때도 사실은 뭐 교회를 모르겠어 군대 가면 사람이 간절해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무조건 교회를 가야 되는 거예요 저는 그때도 그런데 그때 저희 그 수송관이라고 하는 그 운전병들을 담당하는 그 간부가 교회 가는 걸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주일날은 사실 쉬는 날이잖아요? 종교 활동이 보장되어 있는 날이잖아요?
근데 항상 불시에 주일에 딱 예배드리는 시간에 소집을 하는 거예요 저는 책잡히지 않으려고 막 그전에 열심히 막 세차하고 뭐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정비까지 다 끝내 놓고 그렇게 하루는 주일날 또 교회를 갔어요 심지어는 수송관이 저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야 너 교회 가지 마 교회 가기만 해~ 근데 모르겠어 제가 믿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때는 교회를 못 가면 죽을 거 같았어요
그런데 여러분 교회를 가서 너무 은혜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요? 소집이 떨어졌어요 근데 저 빼고 다 모인 거예요 사실 저를 잡기 위해서 그렇게 모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그 수송관이 씩씩거리면서 교회로 내려왔어요 내려와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열어젖히더니 "이병 정지훈 나와" 그 전 예배를 하다가 끌려 나갔어요
그래서 너 그 교회 가지 말라 그랬는데 왜 또 교회 와 있냐고 근데 뭐 이렇게 죄송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또 대답을 안 하니까 그게 더 열받으셨나 봐요 그래 가지고 "대가리 박아" 그러는 거예요 자갈밭에 교회 앞이 자갈밭이거든요 그 나는 너무 머리가 아픈데 박으라고 하니까 또 박았어요 그때도 제가 이제 몸무게가 좀 나왔거든요 그 중력이 있으니까 더 아팠겠죠 그러면서 막 뭐 온갖 그냥 육두문자가 나오고 막 욕을 하고 야 그때는 참 제가 억울하다가도 막 그때 혼자 또 약간 좀 영적으로 충만할 때였는지 야 주님도 이러셨을까? 혼자서 막 그런 생각 하는 거예요 막 혼자서 갑자기 내가 예수님 된 거 같아 생각해보면 그때 아니면 제가 어떤 이런 고난을 다 교회 가는 것 때문에 요즘에 누가 교회 가는 것 때문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 가지고 그냥 사실은 그때는 이게 그냥 그렇게 고난을 받는 채로 계속 군 생활이 끝났으면은 지금 그때는 사실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난 그때 계속 이등병 때부터 병장 때까지 교회 가는 것 때문에 힘들었으면 난 더 큰 주의 종이 됐겠다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데
그때 혜성처럼 등장하는 한 사람이 나타났어요 갑자기 양복을 멋있게 빼입으신 한 신사분이 나오시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보통 군대 교회는 그 그 뭐야 군인들도 예배를 드리러 오지만 그 근처에 있는 분들도 예배를 드리러 오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 교회였어요 그러니까 수송관이 이건 군대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시라고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근데 이분이 갑자기 막 허허 웃으시면서 나도 군대랑 좀 관련 있는 사람이라고 좀 이야기를 좀 해 줄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수송관이 주일에 5분 대기조가 걸릴 수가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고 내가 분명히 그랬어 준비하라 그랬는데 얘가 또 교회 와 있어 가지고 지금 저는 훈육을 하고 있다고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뭐 거기서 뭔 얘기를 하겠어요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이제 그 노신사가 한 분이 아 그런데 자기가 알기로는 주일에는 병사들에게도 이 종교 활동이 법으로도 보장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근데 이렇게 하는 거는 너무 시대착오적인 거 아니냐? 너무 막 이렇게 막 말을 조리 있게 잘하시는 거예요 너무 너무 좋더라고요 전 그 사람이 그 아니 그래도 전시 상황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막 계속 얘기를 해요 계속 그래서 그분이 지금이 전시 상황이냐?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수송관도 계속 이렇게 뭔가 말을 하려고 하려고 하다가도 말이 결국에는 이렇게 막히니까 이분도 답답하셨는지 아니 그래서 혹시 누구시냐고 여러분 그분이 누군 줄 압니까? 저는 깜짝 놀랐어요 새로 부임하는 사단장이었던 거예요 와 그때부터 제 인생이 노 났어요 하루아침에 부식차 운전병에서 사단장 운전병으로 승진했어요 박수 나오죠?
여러분들의 세속사 가운데 있는 거예요 제가 얘기했잖아요? 여러분 제가 진짜 계속 교회 가는 것 때문에 군 생활 2년 내내 힘들었으면 더 저는 더 큰 주의 종이 됐을 것 같아요 근데 여러분 그때 제가 사단장 운전이 되는 바람에 어떻게 된 줄 압니까? 사단장 운전이 되니까 제가 교회를 잘 안 나가더라고요 응 뭐 너무 편하잖아요 편하니까 뭐 군인인데 핸드폰도 주죠 뭐 차도 뭐 좋은 거 타고 다니죠 밖에 있는 거 마음대로 나갈 수 있죠 그러니깐요 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까먹더라고요 호산나 외치다가 오늘 등 돌려서 바라바 넘겨 준 거랑 똑같은 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왜 이야기를 하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 수치와 조롱이 끝이 난다고 우리의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제가 그때 제가 뭐 빈말로 하는 말씀이 아니에요 저는 우리들 교회에 오기 전에는 저는 나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나한테 상을 주셔 가지고 그렇게 사단장 운전병이 되게 하셨구나 그렇게 막 간증하고 다녔어요 돌아다녔어요
근데 우리들 교회 와 보니까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저의 그냥 제 믿음의 실체를 그대로 보게 하셨어요 구속사는 항상 이렇게 고난을 통과한 다음에 사명으로 연결돼야 되는데 저는 그냥 고난이 끝난 것만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오늘 십자가가 나에게 능력이 되지 않는 거예요 십자가 없이 부활의 영광을 경험을 했잖아요
비슷한 맥락이에요 저는 제가 저희 집에 사역을 하면서 저희 집에 경매가 들어왔어요 전세 집에 살고 있었는데 너무 힘든 과정들을 겪었고 그렇게 하다가 결국에는 저희 아버지가 도와주셔 가지고 그 집 문제를 해결을 했어요 그럼 전 해결된 거라고 생각했잖아요 하나님께서 그래도 나를 후대해 주셨구나 감사하구나 감사한 일이잖아요?
그런데요 저희 목사님께서 저한테 딱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너는 그렇게 힘들 때마다 도와주는 아버지가 있어서 참 유감이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고난을 통과하면서 계속해서 내 사명이 이어져 가고 확인하고 그 순종을 통해서 사명을 이어가야 되는데 고난이 끝나 버리고 문제가 해결돼 버리니까 십자가 질 마음이 없어지는 거예요 제가 사역하면서도 그거 얼마나 제 한계로 다가오는지 몰라요 저는 제가 그렇게 안 되는 거를 계속 요즘에 너무 묵상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도 마가복음에 보면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왜 부자 청년이 그렇게 근심하고 떠났을까 예수님 말씀 못 받아들이고 고난을 통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서 사명을 찾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참된 왕으로 오셨어요 근데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왕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오해해요 그리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지금도 이 자리에 우리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지만 각자의 고난과 힘든 문제로 와서 주님 앞에 엎드려 있지만 우리는 그 문제가 해결이 되면 또다시 예수님을 언제 우리가 그렇게 찾았냐는 듯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오늘 이 군중들이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근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수치와 조롱의 모든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묵묵히 보여 주신 거예요 이렇게 해야지 십자가가 있고 이렇게 해야지 부활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우리 가운데 보여 주시는 거예요 고난 주간을 우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일도 계속 팔복산 기도회가 있고 성 금요일 예배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모든 과정과 여정마다 우리가 묵상을 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 자기 부인의 결론인 그 십자가 우리는 얼마나 그 부인을 하면서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가 결국 내가 십자가를 지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 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넘겨지시지 않으셨나 바라바가 그랬고요 우편 강도들이 그랬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활에도 감동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도 사실 인정받는 거 너무 좋아하고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는 거에 혈안이 돼 있던 사람인데요 하나님께서 공황장애 주시고 인생에서 안 되는 사건들을 계속 만나게 하시면서 저는 이제 조금 아는 거 같아요 제가 진짜 고난이 없구나 내가 진짜 아는 게 없구나 내가 진짜 예수님을 일도 모르는구나 이렇게 설교하고도요 저는 나가면은 그냥 세상 왕이 좋아서 거기에 눈이 돌아갈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십자가는 내가 져야 될 십자가였는데 주님이 나 대신 지셨습니다
오늘 그것이 우리에게 믿어져야지 우리의 구원은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게 믿어지지 않으면요 그냥 또 고난 주간이네 또 부활 주일이네 그렇게만 여기면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부활도 의미가 없어요 함께 좀 찬양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앞에 찬양했지만 내가 주님을 부인했고 내가 내 자신을 부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부인했고 그래서 내가 결국 십자가에 주님을 넘겨 준 사람이 납니다라는 고백을 우리가 신앙 고백으로 좀 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입술로라도 먼저 고백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이 입술의 고백이 권세가 있는데 우리가 이 고백하는 찬양대로 또 우리가 기도하는 이 기도대로 주님의 십자가가 내가 져야 될 십자가 주님이 대신 지셨다는 것을 깨닫는 은혜가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너무 많이 묵상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의 여정 여정 하나를 보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기에 주님께서 참 이런 고난을 당하셔야만 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와 상관없는 십자가가 아니라 하나님 내가 그렇게 주님 대신에 건짐받은 바라바와 같은 죄인인 것을 고백하길 원합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우리는 세상의 눈치를 보고 하나님 그렇게 만족해 줄 세상의 왕들을 찾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 역시도 목사가 되고 사역을 하고 이렇게 큐티를 해도 주님 잠깐만 눈이 돌아가면 여전히 수치와 고난 당하시는 주님보다 그렇게 하나님 나의 만족을 이루어 줄 것 같은 그 세상의 왕이 눈에 먼저 보이는 그런 완악한 죄인인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하나님 하나님 우리가 그 주님께서 당하신 그 십자가의 길을 하나님 우리도 감사함으로 갈 수 있도록 주여 이것이 내가 원래 졌어야 될 십자가인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내가 그렇게 주님께서 대신 지어 주신 것 때문에 살았다는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 그렇게 인생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리의 인생의 하루하루를 그렇게 주님 때문에 정말 나 때문에 십자가 지신 주님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오늘 그렇게 구원을 이루어 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우리 역시 그렇게 구원의 길을 가야 되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여전히 연약하고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지금 십자가 앞에 내어 놓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이 안 되는 문제까지도 주님께서 이미 다 해결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이 문제에서 아버지 하나님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더 좋은 주님 내 사모하는 주님 때문에 이것을 뛰어넘고 하나님 사명으로 이어지는 우리 인생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의 그 사랑과 부활을 기억하며 하나님 정말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어 주신 그 주님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고 살아가겠다고 살려내겠다고 고백하는 우리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의 은혜가 오늘 나를 부인하지 못해서 주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 죄인들이 우리인 것을 고백하고 이제는 주님께서 당하셨던 수치와 고난을 황홀로 여기며 구원의 사명을 위해 걸어가길 원하는 이곳에 있는 모든 주의 백성들 머리 위에 이 땅의 모든 주의 백성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https://youtu.be/DOH-YCZ63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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